‘좋은’ 일자리 지키기가 중요한 시점이다. 인공지능(AI), 스마트팩토리, 로봇 등 첨단 신산업이 산업 지형도를 급속하게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본이 투입되어도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제한적이지만, 일자리는 한순간에 사라지고 역외로 유출된다. 사람의 일이 고도화된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숙련 노동자조차 많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한국의 산업화 벨트였던 부산·울산·경남의 많은 일자리는 수도권으로 점점 빨려들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부울경의 충격은 더 크다.
부울경은 정치적 이해 관계를 뒤로 하고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할 뿐만 아니라 ‘탈취’될 위험성이 큰 ‘좋은’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청년들은 눈높이에 맞는 좋은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으로 향한다.
‘로봇 시대’가 오더라도 인간 손이 닿아야 하는 분야가 있고 지역 차원에서 대규모의 좋은 일자리를 지켜내야 하는 분야나 기업은 분명 존재한다. 특히 부산 사상구에 본사를 둔 금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금양의 부진은 전방 시장인 전기차 배터리 수요 정체가 큰 요인이다. 금양은 대기업 계열사가 아니어서 SK온,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처럼 대기업 그룹 차원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금양은 이들 대기업 3사와 달리, 과감하게 부산에 대규모 사업장을 짓고 지역 청년을 고용했거나 고용하려 한다. 한국거래소 상장 폐지 위기에 처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금양은 부산 기장군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신공장(부산드림팩토리2)을 건설 중이고 이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 추가로 고급 인력 상당수(750명 이상)를 충원할 수 있다.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들은 국립부경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들과 협업을 통해 길러진 고급 인재들이 될 전망이다. 그 때문에 현재 금양의 문제는, 지역 청년의 문제이고 지역 대학의 위기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금양이 설사 경영상 실책이 있었다면 살려놓고 난 다음에 추궁하면 될 것이다. 기업과 지역 거버넌스 간 공개 채널을 만들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점이 무엇이고 이를 지역 차원, 시 차원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금양 살리기, 좋은 일자리 지키기의 중심은 무엇보다 부산시장이 돼야 한다.
대기업 배터리 계열사들은 그룹 총수들이 주도적으로 ‘살리기’에 나섰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최태원 회장 주도로 그룹 전체를 재편했다. LG그룹도 마찬가지다. 구광모 LG 회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배터리 산업을 미래의 국가 핵심 산업이자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반드시 성장시키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지역의 ‘총수’는 누구일까. 바로 시민이 뽑은 시장이다.
대한항공 손자회사가 된 에어부산도 마찬가지다. 국토교통부는 2020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발표하면서 두 항공사의 저비용항공사(LCC) 자회사들도 합병하기로 했고 합병 LCC 본사는 부산에 둘 것처럼 발표했다. 그러나 국토부, 대한항공은 발뺌한다. 에어부산이 흔적도 없이 진에어에 흡수되면 부산 일자리는 사라진다. 지난해 9월 말 에어부산 임직원은 1398명이었다.
대한항공이 부산에도 지사를 두거나 잔류 인력을 남겨 두면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한항공은 2020년 7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이 확산하자 국제선 객실 승무원 부산 거점(베이스) 근무제를 폐지했다. 부산·경남에 거주하던 직원 100명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든, 대한항공이든 부산 일자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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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급성장으로 촉발된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유통업계의 재편 움직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획득 등에 대해서도 지자체들은 지역의 좋은 일자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일자리 한두 개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수십 개, 수백 개가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정옥재 서울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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