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증 버려주셔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저녁 찬거릴 사면서 나는 영수증을 받지 않는다. 누구는 인적사항이 기재돼 있는데 그걸 버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지만 영수증을 받으면 처치 곤란이다. 지갑이나 가방 속, 혹은 주머니 속에 구겨진 채로 있다가 쓰레기로 버려지기 일쑤다. 이 종이 영수증은 감열지에 특수한 잉크로 인쇄돼 재활용할 수 없고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영수증을 받아 한번 들여다본 적도 없고 영수증을 가계부에 모아두는 일은 결코 없으니, 영수증을 그곳에 버리고 오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물론 내 인적 사항에 관한 것이 염려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가게에서 잘 처리해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영수증을 받지 않아도 얼마를 썼는지 친절하게 휴대폰이 알려주니 굳이 종이 영수증이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계산 후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먼저 내게 묻는다. 가져가지 않은 영수증이 늘 수북이 쌓여 있는 곳도 말끔하다. “시스템을 바꾸었어요. 이제 필요 없다고 하시면 영수증 출력 안 해요.” 무조건 영수증을 출력하는 시스템을 선택으로 바꾸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현금지급기에서도 ‘명세표를 받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주유기에서도 영수증 출력 여부를 내게 묻는다. 자주 가는 우체국에서도 ‘종이 영수증 드릴까요? 전자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그런데 몇몇 가게는 무조건 종이 영수증을 발행하고 있다. 연이어 들른 식육점에서는 “영수증 필요 없어요”라고 내가 먼저 말했다. 그러나 영수증은 자동으로 발행됐다.
한 달 전 중국 양삭과 상해를 다녀왔다. 큰 도시 상해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도시인 양삭까지 거의 모든 사람이 현금 대신 QR코드로 결제하는 놀라운 변화와 마주했다. 핸드폰으로 QR코드를 찍고 페이로 연결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음식점과 상점은 물론이고 노점까지 QR코드를 앞에 붙여 놓고 장사를 한다. 심지어는 거리의 악사들도 바이올린 통에 QR코드를 붙여 두고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아무도 동전을 넣지 않는다. 대신 QR코드를 찍곤 한다. QR코드 결제 방식은 7년여 전부터 중국 전역에서 실시했으며 외국인에게도 몇 년 전부터 허용되었다 한다.
물론 중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가능한 일이고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점, 개인정보유출 등의 문제가 있다지만 나에게는 장점이 많아 보였다. 중국 돈을 환전하지 않아 편리했다. 내 서랍에는 그동안 여행한 나라의 지폐와 동전이 많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만지는 손으로 돈을 만지지 않아서 깨끗했다. 잔돈을 거슬러 줄 필요도 없다. 종이 영수증도 발행하지 않는다. 일 년간 중국에서 종이 영수증을 발행한다면 몇 그루의 나무가 사라질까? 그리고 그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QR코드 결제는 종이 영수증의 미발행만으로도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많은 기업들이 종이 영수증 대신 전자영수증 받기를 실천하면 탄소중립 포인트로 돌려줘 자원절약과 환경보호에 기여하고 있다. 카드사들도 종이 명세서 발송을 점차 중단한다고 한다. 가게도 시스템을 바꾸어 “영수증 드릴까요?”라고 물어주면 좋겠다.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종이 영수증 발행을 자제해야 한다.
디지털 매체가 발전한 현대사회는 종이의 소비가 점점 줄어들 것이라 했다. 종이책과 종이신문은 외면 받고 있지만 여전히 종이의 소비는 늘어나고 있다. 종이컵 물티슈 키친타월 휴지 등의 소비가 늘고 택배 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현실이다.
‘검색하고 클릭하면 삽시에 번식한다/유의어 동음이의어 예문들의 산란장/종이는 나무의 예문이다 네가 내게 그렇듯’(조한일의 시조 ‘종이사전’ 부분)
시인의 말처럼 종이는 나무에 대한 예문(例文)이며 나무에 예의를 다하는 것(禮文)이어야 하며, 종이는 나무의 아름다움 그 자체(藝文)이다. 종이가 꼭 필요한 곳에 가치 있게 잘 쓰이도록 “영수증 드릴까요?” “영수증 필요 없어요”라는 말이 일상화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