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 제정된 ‘3·15의거법’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3·15의거의 진상을 규명해 왔다. 지난 11일 그동안 3·15 진상규명위원회가 진행돼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15의거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익히 아는 바처럼 국가기념일인 3월 15일은 65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부정선거를 저지른 이승만 정권의 만행을 규탄하며 마산 시민이 궐기한 날이다.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중학생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돼 4월 11일 제2차 마산의거가 일어났으며, 이를 계기로 폭발한 국민적 분노가 4월 19일 거대한 저항의 불길로 타올라 이승만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한국현대사의 첫 번째 민주화운동이자 민주혁명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학술 행사는 오랫동안 4·19혁명에 묻혀 국민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던 3·15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재평가하기 위해서 마련된 자리이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참가자들이 발표와 토론을 통해 4·19혁명사에서 3·15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여러 각도에서 검토했는데, 가장 큰 관심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4·19혁명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서울 중심적이었다는 지적에 모아졌다.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번 학술회의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바대로 한국민주화운동의 발단인 1960년 민주혁명을 4월 19일 그날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3·15의거에 대한 평가를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역사적 사실의 관점에서 볼 때도 3·15가 있었기에 그 영향으로 4·19가 일어났으니 3·15를 빼고 4·19를 말할 수 없으려니와 또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 일련의 사건으로 크게 보면 한 사건의 순차적 국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이 두 사건의 동질성을 파악한 고 이종률 선생은 이 일련의 사건을 4·19 또는 4월 혁명으로 명명하는 것에 대해 이는 사건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3·4월 민족항쟁’으로 호칭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4·19혁명기 부산대 재직 중 통일운동 단체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의 결성과 운영을 주도했던 이종률 선생은 자신의 저서인 ‘현순간정치문제소사전’에서 1960년 3월과 4월에 일어난 ‘3·4월 민족항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월 15일 마산에서 뿜어져 나온 ‘항쟁’의 불길은 ‘마산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대구로 또 서울로 광주로 확대되어가는 민족적 분노 그 요원의 화세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진 음험한 계략과 무자비한 총과 곤봉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확대에 다시 확대되었다’라고.
물론 이제 와 4·19혁명으로 공식화된 사건명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 민주혁명 기간 중 일어난 여러 사건을 개별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한국민주화운동사의 큰 틀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1960년에 일어난 2·28대구의거, 3·8대전의거, 3·15마산의거가 각각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있지만, 결국은 1960년 4·19민주혁명의 큰 흐름으로 수렴된다. 그리고 이 민주혁명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각각의 기념일이 말해주듯 ‘한국적 민주화운동’의 지방적 기원에 관한 문제다. 그 가운데 규모나 영향력으로 보아 결정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마산 3·15의거이다. 4·19혁명 기간 중 각각의 사건들은 3·15의거를 전후로 상호 긴밀히 결속돼 전국으로 확대됐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어서 3월 초부터 이미 도심에 벽보가 부착되거나 삐라가 살포되고 시위가 조직되는 등 저항 조짐을 보였고, 4월 19일 마침내 시민과 학생이 합세해 격렬한 항쟁으로 발전했다. 4월 26일에는 수십만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항쟁으로 절정에 달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지방적 기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유신정권의 몰락에 결정타를 가한 1979년 부마민주항쟁이 그러했고, 전두환 정권의 종말을 고한 1987년 6월 민주항쟁도 그 시작점은 1980년 5·18광주항쟁이었다. 이처럼 한국민주화운동의 지방성에 주목한다면, 3·15의거는 물론 한국민주화운동사 전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65년 전의 ‘3·15부정선거’나 ‘12·3계엄령 선포’나 모두 민주적 헌정질서의 파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언급된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에 보낸 4월 12일 자 전문 중 일부 내용을 인용하면서 65년 전 3·15의거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우리는 한국정부가 선거과정의 잘못에 대한 대중 불만의 표현을 ‘공산주의자가 사주한 일’이라고 성격지음으로써 이 상황을 긴급하게 다루는데 필요한 건설적이고 신속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회피하지 않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