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부산은 왜 망해가고 있을까

김석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김석환 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  |   입력 : 2025-02-27 19:21:51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오래된 사진에서 종종 보듯이 구한말 조선인들은 밥을 엄청 많이 먹었다. 성인 남자 기준으로는 요즘보다 4배쯤 먹었다고 한다. 조선인들의 폭식은 당시 외국인 여행가들의 기록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폭식은 밥 이외의 다른 먹거리가 부족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식량을 아껴봐야 수탈당하기 때문이었다. 1894년부터 1897년에 걸쳐 네 차례, 11개월 동안 조선을 여행한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비숍은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한민족은 게으르고, 의존적이고, 불결하고, 나약한 것으로 인식했다. 비숍이 ‘동학 혁명군’을 ‘무장한 개혁자들’로 표현할 정도의 안목이 있었음에도 그랬다. 하지만 비숍은 조선에서 이주해온 두만강 유역 시베리아 한인촌을 방문한 뒤, 자신이 틀렸다고 여행기에서 밝혔다.

“이곳의 한국 남자들에게는 고국의 남자들 특유의 풀죽은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토착 한국인들의 특징인 의심과 나태한 자부심,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노예근성이, 주체성과 독립심, 아시아인의 것이라기 보다는 영국인의 것에 가까운 터프한 남자다움으로 변했다.”

지배층의 부정부패와 수탈시스템이 없어지자 같은 민족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요즘 용어로는 제도가 경제적 번영을 좌우했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더 풍부하게 발굴하고 학술적인 용어로 책을 쓴 학자가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세모글루이다. 그는 로빈슨 교수와의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지리적·역사적·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가 국가의 성패를 가른다고 서술하면서 남한과 북한의 사례를 들었다. 남북한의 경제적 수준은 1945년까지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남한은 법치주의와 공정 경쟁,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포용적 제도’를, 북한은 독재와 권위주의를 기반으로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착취적 제도’를 채택하면서 오늘날의 격차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는 자신이 이 책을 읽었다며 추천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뒤 법치주의를 무시한 ‘비상계엄’ 발동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 했고, 그 결과 원화 가치와 주가는 폭락하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추락하고 있다.

제도가 경제적 번영을 좌우하는 것은 한 국가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972년 대통령 박정희는 부산에서 새로 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존 공장이라도 증설할 경우 다른 도시 대비 지방세를 5배 더 내도록 법을 제정했다.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제조업체들을 등 떠밀어 부산 밖으로 내보내는 이 법은 1995년에야 폐지되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정치자금 적게 낸다고 부산 최대의 기업이었던 국제상사를 해체했다. 한때 한국의 견인차였던 부산 경제는 그렇게 이중삼중의 타격을 받으며 무너져갔다. 부산시민은 그래도 부산 경제를 속박하는 제도를 만든 정치세력을 일편단심 지지해왔다.

최근 간호사를 많이 채용한 서울의 한 신설 병원장의 이야기를 지인에게서 들었다. 부산 지역의 간호사들이 대거 취업을 희망해 원인을 물었더니 이렇게 응답했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싶다. 그런데 부산에 있으면 월급 300만~400만 원 수준의 미혼 남성을 보기도 어렵다.”

다들 그렇게 부산을 떠난다. 2023년에는 1만1226명이, 2024년에는 1만235명이 수도권으로 떠났다. 일자리를 찾아 떠난 20, 30대가 80%를 차지한다. 외국의 언론들조차 부산의 ‘소멸 위기’를 보도한다. 산업은행이 부산으로 이전하면, 부울경 통합이 이루어지면, 부산의 미래가 바뀔 수 있을까? ‘괜찮은 일자리’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 답은 ‘쉽지 않다’이다. 이전도, 통합도, 일자리 창출도 그렇다.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을 ‘제로섬’게임을 통해 뺏어오는 것도, 행정통합이 실제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 일자리 창출 효과는 여전히 미지수다.

‘괜찮은 일자리’는 대체로 ICT 산업과 대규모 제조업에서 만들어진다. 이들 산업의 공통점은 전력 소모가 엄청나다는 것이다. 수도권 첨단산업에 제대로 전력을 공급하려면 향후 10년간 56조 원의 송배전망 투자가 필요하다. 송배전시설은 자연환경을 훼손해가며 산을 타고 넘어야 한다. 첨단산업에 신속하게 전력을 공급하면서 예산도 환경 훼손도 막는 방법도 있다. 수도권에 소형 원자력발전소라도 지으면 된다. 하지만 수도권의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지역별 전력자급률이 높으면 전기요금을 낮춰주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부산의 전력자급률은 174%이다. 위험부담을 안고 원전 가까이 살면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부산시 자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이 1% 늘어나면 지역 내 총생산이 0.01% 늘어난다. 제도만 바꾸면 기업들이 부산을 제 발로 찾아오고 지역에 ‘괜찮은’ 일자리들이 만들어지고 부산의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상수원에서 가장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부산시민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서울보다도 비싼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전기요금 산정 방식만은 왜 달라야 하는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5. 5“한국 핵 잠수함·전작권 전환, 美 민주 승리로 제약 커질 듯”
  6. 6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7. 7‘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8. 8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9. 9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10. 10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1. 1빚더미 회사에…돈 더 빌려줘 체불 해결하려는 능인선원
  2. 2청해부대 임무, 호르무즈 650㎞ 앞까지 확대…해상초계기도 투입(종합)
  3. 3회생인가 촉구 시민 목소리 1차분 6일 법원 제출
  4. 4김민석, 신천지 논란에 “죄송…조사결과 공개해도 문제”
  5. 5곽규택 “산은, 대한항공이 통합 LCC 부산 설립 거부시 호반지원해야”
  6. 6신천지 의혹 역풍 휩싸인 김민석…계파갈등 격화(종합)
  7. 7양당 모두 400억 토해낼 위기..선거법 개정 화두로
  8. 8전재수 시정 첫 행감…국힘, 기관장 인선 등 파상공세 예고
  9. 9부울경 全 국회의원 회생촉구 서명…노동청, 지광 출석 요구
  10. 10이준석 "지광, 현금잔고 70억 증명서 제출하고 34억 원 체납, 이상한 일"
  1. 1동남아 선정 미식여행지 부산 ‘금정산+온천’ 첫선
  2. 2‘블루 웨이브’ 환호한 美증시, 퍼렇게 질린 韓증시(종합)
  3. 3팔란티어 AI와 함께 만든다…부산 신발업체 창신 ‘혁신 점프’
  4. 4비수도권 미분양 적체…LH 매입 신청 86% 탈락
  5. 52005 APEC 이벤트서 대표축제로…100만 인파관리 ‘근육’ 키웠다
  6. 6수능날 증시 10시 개장…애프터마켓 오후 5~8시
  7. 7한 달 새 금융사 37곳 47만 건 해킹…털린 돈도 10억
  8. 8비에 화약 젖을라 손길 분주…400m 대형 불꽃 ‘카운트다운’
  9. 9국내양식 향어 20여년간 간흡충 감염 ‘0’
  10. 10부산 ‘에이지테크’ 해외 노크…日 시니어 시장 진출 길 열어
  1. 1수의계약 vs 경쟁입찰…북항 돔 부지매입 공방
  2. 2도시철 화명·수정역 사이 중간역 무산…용역비만 날렸다
  3. 3부산대, 아시아대학평가 76위…韓 국립대 1위
  4. 4시민공원서 버스킹 즐긴다…전용 공간 추진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6일
  6. 6금정구 제2체육센터, 중투심서 또 고배
  7. 7황령산 봉수대 영문 안내판 설치키로
  8. 8문 전 대통령 거제생가 복원, 진통 끝 시의회 통과
  9. 9왼쪽 팔·다리 못 써 휠체어 의존…홀로 병마와 싸우는 60대
  10. 10김해·전주시장 “특례시 기준 낮춰달라”
  1. 1승부는 원점…‘홈런 공장’ 대구서 거포들의 전쟁
  2. 2페이즈 신들린 블로킹 9개…읏맨, 시작부터 웃었다
  3. 3태권도, 北 전통무술로 각인될라
  4. 4롯데 전설 故 최동원, 야구인 최초 ‘올해의 스포츠영웅’
  5. 5거인 4인방 APBC(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첫 우승 이끈다…한동희·최준용 중책
  6. 6코르다, LPGA 올해의 선수상 조기 확정
  7. 7동의대 미식축구부 타이거볼 4강 진출
  8. 8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9. 9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10. 10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부산 관광 다음 키워드는 ‘건축관광’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공공재
선출 권력 통제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능인선원, 체불임금마저 대여금으로 처리하려 하다니
미 민주당 상·하원 장악…통상·안보 전략 재점검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낯설고도 궁금했던 부산과의 첫 만남
일상으로의 초대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오래된 건축이 만드는 새로운 연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십시일반(十匙一飯), 나눔이 만드는 연말의 온도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