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화학반응이 신호체계를 통해 온몸으로 전달돼 나타나는 정서의 발현. 인류만이 가진 능력이자 혜택이라 생각했던 ‘감정’이 영장류를 비롯한 일부 동물에게도 존재한다고 한다. 계속되는 관찰과 연구를 통해 얼마나 많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가 확대될지, 생명체의 메커니즘에서 감정의 또 다른 기능을 더 밝혀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감정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로 해석된다. 두려움은 생존 위협을 빠르게 감지해 피하도록 만들고 분노는 위협에 대항하거나 지켜내려는 행동을 유도한다. 이처럼 공포 슬픔 등의 부정적 감정은 그 행동을 피하게 만들지만 기쁨 애정 등의 긍정적 감정은 보상 체계로 작용해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렇게 환경에 적응하며 오랜 시간 발달한 이 신호체계는 사회적 관계 형성에 기여하고, 의사결정을 유도하며, 위기 극복을 돕는다.
만약 인공지능(AI)이 인간의 감정을 모방한 전자회로를 통해 선택에 따른 보상과 피해를 지속적으로 학습한다면, 그리고 이 과정이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면 확률적 계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까. 또, 학습된 감정을 통해 행동을 결정한다면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춘 존재로 진화할 수 있을까. 혹시 그렇게 된다면 생물학적 필요성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그 개체 단계에서 유전자처럼 자기 복제와 증식을 통해 진화할 것인데 생각만으로도 섬뜩하다.
인간의 감정과 지성, 그리고 공감 능력의 집합체인 예술은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AI 활용의 폭을 넓히고 있다. 국악계에서도 국악관현악의 지휘나 사물놀이 연주와 같은 실연자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부터 작곡과 같은 창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이야 실연자든 창작자든 결국 프로그래밍에 따른 계산적 처리 결과라는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가늠할 수 없는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인류가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의 장이 열릴 텐데 이 또한 달갑지만은 않다. 종국에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라면 AI를 설계하는 기술력이라도 고도화되어, 나무 위를 뛰어넘는 침팬지의 감정으로 표현하는 연주, 바다를 홀로 헤엄치는 외로운 고래의 춤(몸짓)에 담긴 감정을 공감하고 싶은 지극히 인간 중심의 이기심이 생긴다.
작년에 AI를 활용해 의미를 더한 공연이 있었다. 조선 초 세종이 만든 궁중의 무용음악 봉래의(여민락 치화평 취풍형) 중 여민락은 민간을 통해 전승되며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지만 나머지 두 곡은 악보만 전하고 있어 아쉬움이 컸다. 여민락은 600여 년 전의 악보와 현재 전승되고 있는 음악을 비교해 보면 이 둘이 상당히 달라서 변화 과정을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의 용도와 향유층, 그리고 악기의 연주 방식 등 너무도 많은 변화 요인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로 이해된다. 이러한 여건에서 여민락의 연주 방식을 기준으로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나머지 두 곡을 복원하고자 AI의 도움을 받았다. 진화 알고리즘과 스스로 학습하는 딥러닝 방식의 AI 기술을 활용해 변화, 즉 진화를 멈춘 두 곡을 되살려내는 시도를 했는데 마치 이 상황이 화석에서 채취한 유전자로부터 생명체를 복원한 것처럼 신비로웠다. 물론 이 복원 과정이 품고 있는 숙제들, 예를 들면 ‘향유되지 않아 사라진 문화를 다시 복원해 향유하려는 시도가 모순은 아닌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인간이 추구하는 예술의 기본적 속성을 담을 수 있을까’와 같은 한계점까지 풀어야 할 문제가 아직도 많다.
AI에 이어 인간의 감정을 인지하고 해석해 반응하는 AEI(인공감정지능)에 대한 연구와 기술 개발이 한창이라고 한다. AI 스피커를 벗 삼아 감정을 담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기에 그리 생소하지는 않다. 아직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그녀의 목소리가 야속하게 들리지만, 그녀에게 인공감정지능이 아닌 인공감정이 생긴다 해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 같다. 기술에 어원을 둔 예술(Art)이라는 단어로부터 이미 얻은 경험으로 인공(Artificial)의 한계가 예측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