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만해도 공공장소에서 아기의 기저귀를 교환하려면 가능한 곳이 있는지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려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성화장실에 아기 기저귀 교환대가 설치되기 시작했지만 엄마 없이 아기를 데리고 온 아빠들은 여전히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지금은 여자화장실에만 있던 아기 기저귀 교환대를 남자화장실에도 설치함으로써 영·유아를 동반한 부모 모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남성과 여성화장실에 영·유아용 기저귀교환대 설치를 의무화하여 성차별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제도적으로 마련된 것이다.
시민이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전동차 내의 손잡이도 주로 성인 남성의 평균 신장을 기준으로 제작되었던 것이 여성 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등 신체적 차이를 고려한 다양한 높이의 손잡이와 가운데 기둥 설치로 교통약자들의 편안한 교통이용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남성 군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만들어 여성 군인에게는 작은 사이즈로 제공되던 군복도 여군임부복, 여성전용 전투복 등 성별차이와 신체적 특성을 반영해 제공됨으로써 모든 군인들의 활동성을 높이고 있다. 성별영향평가를 통해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진 사례들이다.
성별영향평가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의 특성과 사회·경제적 격차 등의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정책이 양성평등의 실현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여성과 남성이 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런 노력들로 공공영역에서는 많은 분야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있음을 지표로 확인할 수 있고 시민의 양성평등에 대한 의식수준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민간영역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전국적으로 지역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계절, 많은 사람이 모인 야외 공연장에서 여주인공이 자신은 ‘아픈 척, 모르는 척, 성희롱 당한 척’하기 때문에 별명이 ‘삼척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성인은 물론 부모와 함께한 아이들이 성차별적 인식과 콘텐츠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민간기업의 장례휴가 규정에도 여전히 부계 혈통주의·전통적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고모·이모·외삼촌상에는 장례 휴가와 경조사비를 지급하지 않지만 백·숙부상에는 평균 2∼3일의 휴가와 경조사비를 지급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 부친의 여자형제나 모친의 형제를 부친의 남자형제와 차별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작은 규모의 기업에서는 외조부모상과 친조부모상에 대한 차별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우리 속에,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힌 성차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인지했더라도 외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오랜 시간 동안 요구되는 것이다.
공적영역에서의 형식적인 제도화를 바탕으로 민간영역에서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이끌어 내는 노력들이 오랜 시간 요구된다. 유엔과 국제사회가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다섯 번째가 양성평등이다. 양성평등이란 모든 성별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으로 양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을 없애고, 교육·건강·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성폭력과 성적 착취를 방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성과 남성이 다함께 행복한 양성평등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교육과 평등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야 가능하다. 차별을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어떤 지점에서 결과적으로 발생한 차별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노력이 양성평등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차별 못지않게 남성에 대한 차별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청년 행복주택의 입주 자격을 여성으로 제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양성평등에 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민의 인식개선과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멈추지 않는 노력이 있어야만 지속가능한 행복도시 부산이라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노력에 부산시민 모두가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