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한때 세계 시장의 40%를 점하던 우리 조선 산업은 최근 20% 전후로 급감했다. 수주 실적도 2023년 1006만 CGT(표준선 환산톤수)에서 2024년 1098만 CGT로 약 9% 늘어난 데 비해, 중국은 2023년 2931만 CGT에서 2024년 4645만 CGT로 약 58%라는 폭발적 증가율을 보였다. 선종별로도 2024년 수주 기준 우리나라는 LNG선 57.2%, LPG선 48.1%를 차지한 반면, 중국은 탱커 71.7%, 컨테이너선 87.8% 등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벌크선은 중국이 77.2%, 일본이 18.4%를 기록하는 사이 한국은 0%로 사실상 시장에서 밀려난 상태다. 그나마 경쟁 우위를 지키고 있는 LNG선도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어, 점차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세계를 선도한 우리 조선업이 저가 수주에 기술까지 겸비한 중국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고, 새로운 시장 개발에도 어려움을 겪는 진퇴양난에 빠져들었다. 초격차 기술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선박에서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는 있지만 경쟁력 있는 선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에서 함정 MRO(유지 보수 정비) 시장을 개방하고, 신조 선박 관련 규제를 완화하며 대중국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해상 패권 경쟁이 우리나라에 MRO 시장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전 세계 함정 MRO 시장은 2023년 약 77조 원에서 2029년 85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이 중 미국 시장은 약 20조 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주요 조선사의 연간 수주액과 견줄 만한 수준이다.

미국의 함정 MRO 시장 개방은 시장 규모와 함께 우리 조선업의 역량과 크기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MRO 산업이 미미해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시장 창출이 가능하다. 여기에 미중 대립 관계로 인해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경쟁 없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와의 경쟁이 필요하지만 저가 공세가 아닌 기술과 안보 협력이 중요한 경쟁 요소인 점에서 우리의 기술 역량과 생산 능력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지원함 2척을 수주해 수리 중에 있다. 비록 지원함 수준이지만 점진적으로 전투함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또 다른 점은 새로운 선박 건조에 강한 우리 조선업의 강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형 조선사와 중소 조선사의 적극적인 관계 정립과 협력이 가능해 시장의 창출뿐만 아니라 국내 중소조선 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함정 MRO 산업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지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대책을 준비하고 있고, 지자체도 발전을 위한 성장의 한 축으로 이해하고 정책적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지금과 같이 산업 환경이 급변하고 대외적 리스크가 어느 때보다 상존하는 이때, 정부의 적절한 정책 개발과 지원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함정 MRO 시장이 열린다 해도 당장의 시장 지배력이 쉽지 않아 시간이 필요하고 부가가치 여부도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현지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질 것이 분명하고, 대형 조선사 위주로 구조화된 우리의 조선 산업을 도약의 산업 생태계 환경으로 재편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RO는 우리 조선 산업의 역량을 다시 확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그 동안 MRO 산업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여러 전문가들이 제안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면밀히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 국가 안보와 동맹국과의 전략적 협력, 그리고 우리 핵심 산업의 발전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어우러진 최적의 기회이기도 하다. 절체절명의 위기로 인식하고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면 이 기회를 진정한 전환점으로 만들 수 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해 대한민국 조선 산업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세계에 드높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