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베이징 발언’이 우리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중국 베이징 특파원 간담회에서다. 그는 “정치는 4류, 관료·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며 정치권을 정면 겨냥했다. 정치권의 강한 반발이 있었음은 불문가지. 그로부터 30년 후, 결국 정치는 경제를 회복 불능 지경까지 몰아넣고 있다. 4류가 문제를 일으켜 2류와 3류의 앞길을 막는 것을 넘어 아예 대한민국이라는 밥솥을 엎을 판이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트럼프 리스크, 고환율, 내수 침체, 제조업 부진 등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던 때다. 비상계엄은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K-강국’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불안한 한국’의 모습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1450원을 훌쩍 넘었다. 1997년 외환위기, 2009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주가는 폭락했고, 외국 자본의 ‘한국 탈출’도 이어졌다.
‘폴리티컬 디스카운트(Political discount)’. 정치적 불확실성이나 불안정성으로 해당 국가나 지역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가 처음 사용한 용어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통화·금융 시스템 전문가이자 수십 년간 한국 경제를 연구한 대표적인 지한파 석학이다. 그는 한국 경제의 근본 처방은 폴리티컬 디스카운트 해소라고 진단했다. 국내 한 언론과 가진 신년 인터뷰에서다.
글로벌 전략가들도 외신을 통해 계엄령 선포 사태로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큰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국가 신용 등급에 많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한국 경제에 대통령이 재를 뿌린 셈이다.
1.67%. 국가미래연구원이 제시한 올해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다. 경제 성장률을 제시한 국내 기관 중 가장 낮다. 사실상 경제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경고다. 정국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경제의 역주행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이는 국민에 재앙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됐다. 비상계엄 선포이후 43일,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지 15일 만이다.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시계’를 45년 전으로 되돌렸다. 다시 정상화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태우 서울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