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패자부활’ 가능한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한영표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

  • 한영표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
  •  |   입력 : 2025-01-08 18:33:5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필자가 대학 다닐 무렵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기가 다가오면 강의 내용 정리가 잘된 친구들 노트를 복사해 열공하는 것이 필수였다. 그러기에 친구에게 노트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간혹 내 노트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 노트를 받아 복사하고, 또 누군가는 복사한 노트를 또 복사해서 같이 공부하곤 했다. 사법고시 준비할 때도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나름 심혈을 기울여 정리한 논문을 빌려주기도 하고, 친구가 작성한 답안에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공부하곤 했다.

지금 돌아봐도 힘든 시기였지만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면 소주잔을 기울이며 다독이기도 하고, 술 취한 친구와 자취방에서 같이 자고 다음날 쓰린 속을 해장국으로 달래곤 했다. 공부할 당시에는 친구가 경쟁 상대라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무렵 내 노트를 빌려 공부한 친구가 더 좋은 학점을 받는다는 것이 나에게 실패로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학점이 상대평가였기에 다른 친구가 더 좋은 학점을 받으면 내가 낮은 학점을 받을 수 있었지만, 학점이 인생의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험은 친구와의 경쟁이 아니라 나와의 경쟁이었다.

예전에 젊은 변호사들과 식사하던 중 시험 때 노트나 교재를 빌려 주는 이야기를 하니, 로스쿨 학생들이 책이나 노트를 빌려주는 것이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로스쿨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이 나중 법원이나 법무법인 등 취업에 절대적 영향을 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로스쿨까지 무려 10년 이상을 ‘친구’보다는 ‘경쟁 상대’인 동료들과 기나긴 경쟁을 견디어야 한다는 것인데, 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실패를 경험해 보고, 친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친구와 공동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시험마다 쫓기며, 선행학습으로 번 아웃(burn out·심신이 지친 상태) 될 지경인데, 이렇게 오랜 기간 경쟁의 시간을 거쳐온 로스쿨 학생에게까지 또 그런 생활을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던 팀 월즈는 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시골에서 태어난 본인의 유년 시절 이야기로 연설을 시작하며 “전교생 숫자는 24명밖에 안 됐고, 아무도 예일대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이웃처럼 살갑게 챙기는 법을 배웠다”는 연설을 했는데, 우리는 이렇게 친구를 살갑게 챙기는 학교 생활이 가능할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필자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후배 변호사를 보면서, 내가 변호하는 의뢰인들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감정은 우리사회가 패자부활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한번 학교 시험을 망치면 내신점수 때문에 심대한 타격을 받고, 대학생도 학점이 안 좋으면 취업도 쉽지 않고, 가고 싶은 로스쿨도 갈 수 없고, 로스쿨 학생도 학교 시험 못 치면 학점 때문에 진로에 지장이 생겨버리는 실정이다.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가 패권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패장을 처형했던 카르타고 등과 달리 패장에게도 설욕의 기회를 주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했다. 아버지 스키피오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패한 적 있지만 로마 시민은 다시 군사를 주어 전쟁을 치르게 했고, 이후 아들 스키피오는 결국 카르타고를 격파하고 로마의 패권시대를 열게 했다는 것이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TV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해 “지금 겪고 있는 시행착오가 불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굉장히 멋진 곳에 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수 있다”고 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응원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입시험 발표일을 맞으며, 시행착오를 겪어 과거 점수가 좋지 않은 중·고등학생, 나아가 대학생들이 다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교육제도가 무엇일까 고민해 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5. 5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6. 6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7. 7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8. 8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9. 9[사설]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10. 10“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1. 1820조 예산전쟁 개막…여야 ‘3대 메가·미래기금’ 격돌 예고
  2. 2박수영 ‘국쫌만’ 300회…888건 민원 풀어
  3. 3주민자치회 정식 출범 원년…유럽 모범사례 현장을 가다
  4. 4‘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5. 5“7개 정당 19명 치열하게 토론…대화·설득으로 의견 일치 봐”
  6. 6민주, 조희대 ‘계엄 동조’ 여부 정조준
  7. 7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8. 8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9. 9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10. 10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1. 1부산서 미분양 1군 브랜드 486가구 통째 전세로 공급(종합)
  2. 21만석으로 줄여라? BPA 초라한 아레나돔 고집
  3. 3가덕 첫삽 끝내 연내로 후퇴…당정 “공사비 8500억 증액”(종합)
  4. 4면접 보고 그날 합격 통보…BIFC 채용행사
  5. 5편의점 번진 요거트 인기…세븐일레븐 ‘요즘’과 맞손
  6. 6부산은행 김해공항점 계속 운영
  7. 7중산층 10명 중 4명 벌이 줄었다
  8. 8조선 빅3 공동납품망 완성…부산 기자재 플랫폼 안착(종합)
  9. 9롯백 편집숍 ‘시시호시’ 부산 감성 입었다
  10. 10캐릭터로 동심 공략하고, 어른 향수도 자극하고
  1. 1김해공항 10개월째 수장 공백…제2 출국장 부분 운영 여전
  2. 2선박 2척 버티기…수영만요트장 재개발 착수 해 넘기나
  3. 3선거법 위반 혐의 양산시 특보 숨진 채 발견
  4. 4“지광은 국제신문 떠나라” 직원 빗속 상경투쟁
  5. 5“국제신문 위기는 민의 위기” 지역사회 잇단 지지
  6. 6경비·미화 넘어 AI·관광 전문가로…은퇴 뒤 더 빛나는 삶
  7. 7여전한 특수학교 님비 “주민체육시설 끼워 짓자” 고육책
  8. 8국힘 과반 양산시의회, 민감한 3개 안건 부결 왜?
  9. 9대학·마을에 스며든 이전 기관…지자체는 정주지원 화답
  10. 10“부산형 상병수당, 고령노동자도 줘야”
  1. 1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2. 2“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3. 3“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4. 4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5. 5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6. 6‘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7. 7“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8. 8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9. 9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10. 10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호감과 비호감 사이
클릭으로 여는 독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대통령의 SNS 신중함과 절제로 국정 신뢰 지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