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 한국미술사에는 치유하기 힘든 두 가지 비극적인 현실이 있다. 식민지 시절 일제에 부역한 친일미술인 문제와 한국전쟁으로 북쪽의 노선을 택한 월북화가 문제이다. 친일 혐의가 있는 미술인에게는 ‘반민족행위자’라는 굴레가, 월북 화가들에게는 ‘빨갱이’라는 족쇄가 씌워졌다. 미술 현장에서 친일미술인으로 낙인찍힌 유명 미술가들은 창졸간에 부끄러운 존재가 되었고, 월북 화가들은 이념 문제로 학교 교육에서조차 이름자가 지워지는 불운을 겪었다. 친일 문제야 이민족인 일본과의 관계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월북 문제는 같은 민족끼리의 반목이라 동족상잔 같은 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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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임신의 작품 ‘검정 강아지’. |
월북 화가들의 이름조차 ‘김○준’, ‘이○대’, ‘정○여’ 등으로 불완전하게 기록되며 본래 이름을 정확히 알 수 없게 했다. 대표적인 화가 중의 한 명이 전북 순창 출신으로 일본 유학 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차례 입선 했으나,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임신(林愼, 1912~?)’이란 화가이다. 한국에 있을 때나 일본에 유학했을 때 활동이 미미했고, 귀국해 월북하기까지 활동 기간도 짧아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서운(栖雲), 자연(子然), 대조자(大條子), 무경거(無境居)’ 등의 호를 사용했는데, 독특한 호에서 느끼듯 비범한 성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임신이 출중한 그림 실력을 가졌음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다보니 미술계에서 우스운 일이 많았다. ‘임신’이란 이름이 ‘여성이 아이를 가진 상태’를 의미하니, 듣는 이들이 사람 이름인 줄 몰라 뒤늦게 웃기도 했다. 더욱이 화가를 부르는 풍습대로 대표적인 호인 ‘자연’을 앞에 붙여 부르면 ‘자연 임신’이 되어 더 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재미있는 사연이 있고 작품이 좋은데도 그가 세상에 덜 알려진 것은 활동 기간도 짧았고 작품도 흔치 않아 시중에도 작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대기 화가를 연구하는 이 중에도 임신이란 작가를 아는 이가 적을 정도였다. 그러나 임신은 동시대에 활동한 다른 작가 못지않게 작품의 수준이 높았다.
그는 일본에 유학해 곤도 고이치로(近藤浩一路) 문하에서 수묵을 위주로 한 몰골체 기법을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광주의 정신으로 존경받던 의재 허백련 문하에 들어가 활동했다. 금강산 여행 후 깊은 감동을 받아 자주 그곳의 풍경을 그렸다. 금강산의 절묘한 산세를 진한 수묵으로 거칠게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필치로 수채화처럼 맑게 그리기도 했다. 산수 뿐만 아니라 화조 인물 영모화 등 여러 방면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 외곽선을 생략하고 오직 먹만으로 그린 영모 작품은 섬세한 필치 뿐만 아니라 짐승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생동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1940년대 후반에 삽살개를 닮은 ‘검정 강아지’를 그린 작품이 전한다. 가능한 한 선묘를 줄이고 오로지 검은 빛 먹물의 농담만을 사용해 강아지의 모습을 그렸다. 화제에 쓰여있는대로 ‘우란(又蘭)’이란 호를 사용하던 이의 회갑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린 것이다. 우란이란 이가 개띠였던 모양이다. 어린 강아지를 그림으로써 60번째 탄생일을 기념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는 어딘가 모르게 두려운 눈빛을 하고 얌전히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임신은 부드러운 모필을 사용해 먹의 농담을 조절해가며 강아지의 모습을 채워나갔다. 선을 사용하지 않고도 수북한 털의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앉아있는 자세가 어색하지 않도록 잘 표현했다. 이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그린 작품이라면 중국, 일본의 어느 명가 못지 않은 솜씨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