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연 차 다른 지역에 다녀왔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가는데, 해안을 따라 늘어선 건물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 풍경이 어딘지 쓸쓸해서, 무심코 말을 했다. “해안에 있는 건물들이 다 문을 닫았네요.” 그러자 기사님이 대답했다. “그런지 한참 됐어요. 경기가 최악이에요. 우리 같은 택시 기사들은 몸으로 알거든요.” 나는 그게 언제부터냐고 물었다. “반년은 됐죠. 제가 택시기사 20년은 했는데, 정말 경기가 최악입니다. 이러다 나라 망하겠어요.”
요 근래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그보다 전에는, 한 자영업자로부터 자기가 있는 건물이 5층 건물인데 자기 층 빼고는 전부 공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건물 몇 층이 통째로 비어있는 게 흔하게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출판업계와 연이 있다 보니, 점점 더 심해지는 출판 시장의 곡소리도 많이 듣게 된다.
개개인의 삶이야 저마다 희비가 있겠지만, 그래도 한 사회의 흐름이 어려운 쪽으로 가고 있는 건 맞는 듯하다. 강연에서 한 청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요즘 청년들의 삶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고 했다. 직장을 찾아 친구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수도권에 몰리는 청년들을 향해, 불나방처럼 화려한 것을 좇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에게 들어보니, 주위 친구들은 모두 직장을 찾아서 수도권이든 기업이 있는 다른 지방에 가는 것이라 했다.
특히, 그가 사는 지역에서는 경력직을 많이 뽑는데 신입 경험을 위해 수도권에 가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화려한 것만 대책 없이 좇기보다는, 자기 삶의 최선을 절실하게 찾고 있다. 어떻게든 한 명의 성실한 주체가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어쩌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 방어를 하고, 연기금을 쏟아내며 주식시장 하락을 막고 있다고 한다. 그 모든 건 미래에 지는 빚이다. 청년들과 아이들에게 지는 빚이다. 시중에는 돈이 쏟아지고,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상승하며, 청년들은 저축해야 할 돈을 비싸진 밥을 사먹고 월세 내는 데 써야한다. 각종 기금이 고갈되면, 청년들에게 더 걷고 덜 줘야 한다. 머리가 거대해진 인구구조에서, 아래에 속한 청년들은 짓눌리고 착취당한다.
실제로 청년들은 너무나 높은 주거의 벽, 취업하고 자리잡기의 어려움, 힘들어지는 생활고 속에서 결혼과 출산 등을 포기하고 있다.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걸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원하는 일자리가 없어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 청년 숫자는 70만 명에 이르러,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라고 한다. 이는 코로나19 때보다도 많은 숫자로, 청년들의 ‘단념’에 관한 정서가 짙게 느껴진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 번도 일해본 적 없는 청년들이 아니라, 일을 경험해보고 도저히 희망이 없다고 느껴 ‘되돌아 나온’ 이들이다.
일자리 소득 자산은 모두 양극화되고, 하루하루의 노동이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 속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부유’하는 청년들이 유령처럼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게 한국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한편에서는 한국의 음악 문학 영화 드라마 같은 것들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K-아이돌이나 K-콘텐츠가 유행하고, 최근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실제로 세계에 보이는 그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한국은 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의 끈을 이어갈지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된다. 이제 나도 서서히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입장에서, 나의 존재나 삶은 과연 이 사회에 의미 있는 희망을 만들고 있나 고민하게 된다. 나도 그런 희망을 조금은 만들어가야 하는 이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청년들에게 가혹한 나라의 미래는 없다. 사회 전체가 이 ‘희망 찾기’에 전력을 쏟아야만 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