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은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항로를 제시하지만, 그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늘 존재한다. 최근 조선해운업계의 새로운 변화는 자율운항 선박의 등장이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인공지능과 첨단 센서로 움직이는 자율운항 선박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세계는 이를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현실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정비와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술만 발전했을 뿐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혁신은 빛을 잃게 될 것이다.
자율운항 선박의 가장 큰 기대 효과는 인적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해상 사고의 약 80%는 선원의 실수에서 비롯되며, 이는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유발한다. 자율운항 선박은 이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인공지능은 기상 정보와 항로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항로를 찾아내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 동시에 연료비 절감과 탄소 배출 감소라는 경제적·환경적 이점도 기대된다. 자율운항이 도입되면, 해상 운송 비용은 최대 20% 절감될 것으로 예상되며, 탄소 배출량도 획기적으로 줄어 국제사회의 환경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침체기에 빠진 조선 산업과 해운업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기도 하다.
그러나 자율운항 선박의 상용화는 기술 발전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무엇보다 법적·제도적 공백을 메우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나라 해상법 체계는 선박의 운항 주체를 ‘인간’으로 전제하고 설계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선박이 충돌하거나 사고를 일으켰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어렵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시스템 오류에 대한 책임을 선박 소유주에게 물을 것인지, 기술 개발사나 운항 관제센터에 물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미진하다. 제조물 책임법을 적용하더라도 선박의 운항 환경은 육상의 자율주행차와는 다르게 더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많다. 기술 혁신이 가져올 법적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험업계 또한 자율운항 선박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선원 관련 사고 보상비용은 줄어들겠지만, 해킹이나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는 또 다른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자율운항 선박이 해커의 표적이 될 경우, 선박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해상 물류 전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자율운항 선박은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강력한 사이버 보안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
자율운항 선박의 도입은 기존 선원들의 역할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선원이 줄어드는 대신, 육상에서 선박을 원격으로 관리·통제하는 운항사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이는 기존 항해사와 기관사를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도록 재교육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자율운항 기술이 확산될수록 항해와 조선에 필요한 기술은 IT 중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재교육과 직무 전환이 시급하다. 이 과정에서 기존 해양 교육기관은 항해기술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사이버 보안 등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미 자율운항 선박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을 MASS(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로 정의하고, 단계별 자율화 기준을 마련했다. 노르웨이와 핀란드 일본 등 기술 선진국들은 자율운항 선박의 상용화를 목표로 관련 법률과 규제를 정비하며 앞서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해양수산부 주도로 스마트 자율운항 선박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기술 개발에 비해 법적 준비는 여전히 미흡하다. 법과 제도가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와 산업계는 더욱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기술 선진국과의 국제 협력을 강화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법적·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기술과 제도가 함께 항해해야 비로소 바다 위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