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노벨위원회의 연락을 받고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는 말로 감사함을 표했다. 앞선 과학자들과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기반 위에 낸 성과임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으로, 1676년 아이작 뉴턴이 로버트 후크에게 보낸 서신의 문구인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이다”를 인용했던 것이다. 어느 과학자가 표현했듯 과학은 과거에 현재를 쌓아올리는 과정이고, 하나의 이론 위에 새로운 이론을 연속적으로 연결해 가면서 발전해 왔다.
생화학자이자 컴퓨팅생물학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는 20여 년 동안 단백질 설계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내면서 화학계의 난제 중 하나인 단백질의 구조 예측과 설계에서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공을 인정받았다. 노벨위원회는 “베이커 교수는 계산적 방법으로 단백질 설계법을 개발한 공로를, 허사비스와 점퍼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한 공로를 인정해 노벨화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올해의 화학상은 파격적으로 세 명의 공동수상자 중 두 명이 화학자도 생물학자도 아닌 알파폴드 (Alphafold)를 개발한 구글(google)의 인공지능(AI) 전문가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은 바둑 AI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였다. 베이커 교수는 공동수상자들의 성과를 보면서 AI의 힘을 깨달았다고 했고, 앞으로 AI가 접목된 단백질 설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단백질은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매우 중요한 물질로 다른 물질에 비해 구조가 특히 복잡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돼 왔다. 단백질 화학 분야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었던 이유도 그만큼 어려운 숙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1962년 X선 결정법으로 단백질 구조를 규명한 존 켄드루와 막스 페루츠를 시작으로, 핵자기공명분석법(NMR) 분광법과 극저온 전자현미경을 개발한 과학자들에 이어 올해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기술 개발자들이 수상했다. 특히 2021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2에 이어 올해는 알파폴드3까지 개발돼 단백질 구조 예측의 정확도는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또한 치료제 개발은 물론 플라스틱 분해 효소, 생분해성 소재 등의 맞춤형 단백질 개발 연구도 가속화될 것이다.
올해 노벨화학상은 AI시대의 도래와 학문적 경계를 넘어선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측면 외에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이번 화학상 수상에는 단백질정보은행 (PDB)이라는 중요한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 며칠 후 저명학술지 네이처(Nature)는 헬렌 버만 (Helen Berman) 교수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버만 교수는 1971년 PDB설립을 제안해 공동소장을 역임하기도 한 생물학자로, AI 개발에 필수적인 정확한 단백질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면 PDB가 보유한 엄청난 단백질 구조들이 없었다면 알파폴드나 베이커 교수팀이 개발한 로제타폴드가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베이커 교수와 허사비스 대표 모두 말하고 있다.
PDB가 보유한 단백질 데이터는 1982년 100개의 단백질 구조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23년에는 20만 개 이상에 달하게 되었다. 2003년 버만 교수는 네이처지에 PDB의 확장을 발표하면서, PDB가 구조적 데이터 개발을 위한 방법의 발전을 과학계에 독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후 실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고(archive)로 정착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은 거인들’이라 불릴 수 있는 과학자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AI시대의 과학은 연구실에서 수행하던 개인 연구에서 많은 작은 거인들이 받쳐주고 함께 하는 공동 연구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학문적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자들의 소통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난제를 풀 수 있는 지름길이다. 베이커 교수가 본인의 수상을 단백질 설계 분야 과학자 공동체의 성과라고 표현한 것은 그저 겸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