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이상한 꿈을 꾸었어. 성전 장식을 하다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는데 붉은 장미 한 송이를 쥐고 있더라.”
언젠가 들었던 친구의 꿈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에는 어떤 색이 좋을까 생각하던 중이었다. 친구는 성당의 제단을 장식하는 성전 꽃꽂이에 진심을 다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지 알기에 장미의 붉은 빛이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목적을 향한 강한 의지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다시 묻게 했다. 붉은 장미를 쥐고 있는 간절한 모습은 나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꽃 작업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만큼 몸이 아프던 어느 날, 세상을 먼저 떠난 이가 내 손에 붉은 열매를 가득 쥐어주는 꿈을 꾸었다. 그 붉은 열매를 먹고서 꽃이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온 생을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한걸음씩 나에게로 돌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무렵 나의 꽃 작업은 단순히 공간을 장식하는 플라워디자인을 넘어서서 영혼을 비추기 시작했다. 꽃의 빛깔을 통해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색에 대한 자각은 세상의 모든 존재들에 대한 본성과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색은 빛의 파장이 우리 눈에 도달하면서 지각되는 현상이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생명과 에너지, 그리고 감정의 언어가 된다. 마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는 것처럼 신비롭다. 꽃을 보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이러한 신비를 경험하는 일이다.
올해는 12월 첫 날에 사수자리 첫 번째 달이 떴다. 그날 밤, 나는 붉은색 장미꽃과 열매로 더글라스와 비단향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초록 잎과 빨간 꽃 모두를 하나로 이어줄 금줄을 두른 뒤 불을 밝혔다. 그러자 마치 촛불을 켠 듯 온기가 퍼지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세상은 이미 변화의 에너지로 가득했다. 붉게 하늘을 물들이는 일출과 일몰의 빛깔처럼 나의 삶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가슴으로 진동이 전해졌다.
빨간색은 열정과 생명, 풍요와 결속, 그리고 예수의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상징하는 색이다. 불꽃의 빛깔이듯 따뜻한 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행동하는 에너지로 사용되며 영적으로는 정화의 불꽃이 되어 ‘깨어남’으로 표현된다. 보살핌, 연민, 희생적 사랑의 속성을 지니며 성장을 돕는 색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할 때 붉은색에 끌리곤 한다. 이것은 회복기를 지나고 있다는 신호이다. 반대로 열정이 지나치지 않도록 알아차리게 하며 심리적으로 분노를 느낄 때 붉은 색이 눈에 띈다면 ‘멈춰야 할 때’를 알리는 붉은 신호등이 된다. 또한 피로를 자주 느끼고 기운이 없다면 붉은색이 끌릴 수 있다.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육체·심리적 무기력 상태에 빠졌을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 시도도 하지 못할 때 에너지를 보충하고 신체적 힘을 기르도록 돕는 색이 붉은색이기도 하다. 신부의 두 뺨에 찍은 연지, 장을 담근 뒤 빨간 고추를 두르는 일, 동지에 팥죽을 뿌리며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붉은색을 사용한 것도 동양의 오방색에서 붉은색이 가장 생명력이 충만한 양의 기운을 가진 색이기 때문이다.
붉은 장미꽃으로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본다. 내 삶의 방향과 진실을 담은 푸르른 상록수에 생명의 불꽃이 피어난다. 붉은 장미를 이어주는 금줄의 밝은 빛이 친구의 꿈에서 나의 손끝으로 건너와 세상과 연결된다. 나를 둘러싼 빛이 더 환해지면 붉은색 꽃은 분홍빛이 되리라.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 색인가? 그 빛깔을 지닌 꽃을 바라보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 보면 어떨까? 아름다운 꽃의 빛깔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스스로의 영혼을 비추어 보면 무엇을 위해 사는지 그 이유가 선명해질 것이다. 아름다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