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정치인 출신이 아닌 자신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하더니, 정치를 없애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선포했다가 이내 철회한 비상계엄은 두통이 왔다고 머리를 자르려고 든 격이다. 아마 그렇게 하면 머리는 안 아플 것이다. 그럼, 생명은?
국회가 자기 뜻과 다르게 움직이자, 국회에 무장한 군대를 들여보냈다. 국회를 없애버리려고 한 시도다. 비상계엄 제1호 포고문에는 ‘없애버려야 할’ 적이 가득하다. 제1호 포고문 1항은 이렇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집회, 결사, 시위 등 일체의 정치 활동을 금한다.” 이걸 쓴 사람들은 진짜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어쨌든 금해야 할 정치 활동이란 ‘나와 생각이 다르며 내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치 활동’을 뜻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 시도 또한 있었다. 없애려 들었다.
큰 틀에서 볼 때, 비상계엄 포고문 내용이나 이걸 추진한 자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은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그들 자신에게 되돌려주듯이 적용하면 다 들어맞는다는 특징이 있다. 워낙 희대의, 보기 드문, 괴작 같은 문장들이라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다. 2항.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며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비판을 허용하는 게 민주주의 본질이다. 여기서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핑계로 정치 자체를 없애려 한다.
3항.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파업 태업 집회도 없애고(4항) 정부의 말을 듣지 않는 전공의·의료인은 계엄법으로 처단한다(5항). ‘전공의·의료인을 비판하는 이 문구를 넣으면 국민 지지가 솟겠지’라고 생각했지 싶다. 처단해서 없앤다는 방침이 확고했다. 검사로서 해온 대로 소추하듯이 처분·처단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느낌도 든다.
계엄에 관한 우리 법의 규정은 사법·행정에만 영향을 끼치되, 입법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니 국회로 군대를 밀어 넣은 행위나 국회·지방의회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는 애초 위법이었다는 지적이 매우 많다. 비상계엄이 경고성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냥 망발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게다가 국민은 말로 겨루며 티격태격 논쟁하되 협상도 하는 ‘갑갑한’ 과정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이 정치의 본질임을 안다.
정치를 없앰으로써 정치를 하려고 들었으나 자유민주주의체제 정치의 판만 깨고 어긋난 윤석열식 정치에 대한 대응이 없을 수 없다. 탄핵 정국은 그 대응 방향 가운데 하나다.
조봉권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