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울린 총성으로 18년 박정희 정권이 무너졌다. 최규하 국무총리는 다음 날 비상국무회의를 열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48년 제1공화국 출범 후 아홉 번째 비상계엄이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쿠데타가 성공해 대통령이 된 1981년 1월 24일까지 계속됐다. 456일 동안 이어졌다.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계엄령이다.
격동의 시기였다. 박 대통령의 뒤를 이어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유신헌법에 따라 치러진 12월 6일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같은 해 일어난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국가의 실권을 장악했다. 신군부에 맞선 군인은 총에 맞아 희생되거나 체포돼 영어의 몸이 됐다.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내용이다. 계엄군은 정치를 억압했으며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언론사가 통폐합됐고,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은 구금되거나 해직됐다. 집회와 시위가 금지됐다. 계엄군이 나라를 통치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신군부가 전날인 17일 비상계엄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하자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전두환은 광주에 특전사를 보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10·26 사태에 앞서 박 전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나자 18일 부산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계엄군은 시위하는 시민과 대학생을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워 총으로 눌렀다. 시민 폭행에 항의하던 형사마저 두들겨 패 중상을 입혔다. 대한민국 여덟 번째 비상계엄의 모습이었다. 최초로 발령된 비상계엄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반란 사건 때이다.
소극적인 치안 유지 목적인 경비계엄과 달리 비상계엄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 행정권과 사법권이 계엄군에 넘어간다. 계엄군이 국가의 전권을 휘두르는 셈이다. 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안전장치가 돼야 한다. 그러나 독재정권은 권력 찬탈이나 유지 방편으로 악용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으로 선포된 비상계엄 이래 45년 만인 2024년 12월 3일 밤 10시23분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했다. 반국가·종북세력이 국회를 장악해 행정과 사법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상 열 번째 비상계엄을 발표한 순간이었다. 대한민국이 45년 전으로 순간이동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일어났다.
최현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