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종교축제이다. 하지만 예수가 12월 25일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실, 로마제국에 속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의 로마인들의 ‘태양신’ 축제를 지낸 12월 25일에 ‘저물지 않는’(sol invictus) ‘참태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기념하려 했다. 세상의 축제가 활기와 흥분이 있는 반면, 그리스도인들의축제는 소박하지만 확고하게 구원의 때를 기념하려 했다.(성탄절의 영어인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인들의 미사’(Christ + Mass)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지(冬至)를 기점으로 어둠이 극에 달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참빛을 떠올렸다. 이러한 신앙은 문화로 표현되는데, 성모마리아의 ‘원죄 없이 잉태’를 기념하는 12월 8일부터 성탄시기가 끝나는 주님공현대축일(2025년은 1월 5일이다)까지 거리에 전구를 밝혀 참빛이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다. 마치, 부처님 오신날의 연등을 다는 것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파리의 샹젤리제 뿐만 아니라 로마의 코르소 거리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와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장소의 작은 골목에 이르기까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예수 오심을 기념한다.
이러한 신앙의 문화를 한국의 그리스도교 교회도 실천했는데, 정확하게 시기는 맞아 떨어지지 않더라도 교회나 성당을 빛으로 장식한다.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둠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밝은데, 교회나 성당의 ‘삐까번쩍’한 성탄조명은 ‘빛 공해’로도 여겨진다. 어쩌면 수많은 조명장식으로 예수의 탄생을 알려주는 ‘큰 별’은 빛을 잃을지도 모른다.
2009년 시작된 ‘광복로 겨울빛 트리축제’는 올해도 펼쳐질 것이고 또 광복로 말고도 서면이나 해운대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특히 상권지역에 설치될 것이다. 유럽에서도 ‘나눔’을 목적으로 ‘크리스마스마켓’이 생겨 물건을 사 가고 또 초콜릿이나 ‘뱅쇼’(vin chaud)도 마실 수 있지만, 우리의 축제에서는 ‘나눔’보다는 ‘상권’이 더 우세한 듯 하다.
화려한 불빛 속에서 연말분위기가 물씬 풍겨 시민이 한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 하지만, 여기에 축제의 ‘주인공’은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마치 아기 예수를 뉘일 방이 없어 마굿간으로 가야 했던 것처럼… 이러한 종교 축제는 분명 세속 축제로 바뀌고 있다.
시민이 기뻐하고 또 함께 하는 것으로 세속 축제는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회종교학은 세속 축제가 시민의 통합과 안녕을 도모하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하는데, 어쩌면 축제를 통해 종교의 역할을 수행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세속 축제가 보다 시민을 위한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실제로 수많은 지역축제는 시민의 통합과 안녕을 도모하지만, 시민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상권의 축제는 비용의 적절성에 대한 질타를 받는 경우를 보게 된다.
부산의 몇가지 축제가 시민 중심이 아닌 행정 중심이나 행사 중심이 되는 것을 우려한다. 그 예로 부산의 대표 축제라 부를 수 있는 ‘부산불꽃축제’는 이미 2015년부터 일부 좌석이 유료화 되었고 또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2019년부터 전면 유료화가 시작되었다.(그나마 ‘부산국제영화제’는 할인된 가격으로 새로운 영화를 제공한다.)
축제의 유료화로 부담을 느낀 시민은 그 축제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해지고 있다. 이러한 축제의 유료화는 시의 행정에는 유익할지 모르지만, 누구를 위한 축제냐는 물음이 뒤따라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축제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시민의 통합과 안녕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상권의 특수를 위한 것인가? 이 축제들이 도시브랜드를 드높일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시민의 참여가 없거나 배제되는 도시브랜드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행여나 밤하늘에 수많은 돈을 쏘아대는 것이나 빛 공해로 잠들지 못하는 도시가 부산의 정신을 드러내는 축제라고 설명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권의 논리, 시장의 논리가 시민의 정신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