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마지막 날 오후 늦게, 필자는 잰걸음으로 백악미술관(서울 종로구)을 찾았다. ‘담연 임철순 서문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아뿔싸! 개막식은 이미 끝났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뒤풀이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따뜻한 환대와 함께 두툼한 전시회 도록도 선물로 받았다. 감사했다.
지난 10월 31일부터 지난달 6일까지 백악미술관에서 ‘담연 임철순 서문전’이 열렸는데, 전시 제목은 ‘操觚 半世紀 染翰 十二載(조고 반세기 염한 십이재), 선비를 생각한다’로 총 52점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조고(操觚)란 문필에 종사한다는 뜻으로 언론 출판계의 별칭을 말하고, 염한(染翰)은 붓에 먹물을 묻힌다는 뜻으로 서예의 별칭이라고 한다. 그는 올해 현직 기자로 언론계 50년을, 서예계 12년을 맞았다. 묵직한 세월이 알려주는 것처럼, 그동안 한국일보 주필을 역임했고, ‘손들지 않는 기자들’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으며, 한국기자상·참언론인대상·위암 장지연상 등을 수상했고, 또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명사 초대부문에 6회나 출품했다.
그럼에도 그의 ‘겸화(謙和)’는 오히려 그를 더 빛나게 한다. 전시회를 열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목은 이렇게 거창하지만 글씨는 볼품없습니다 … 용기를 낸 것은 전시라는 게 잘 쓴 글씨를 자랑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살고 있소’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오’라고 알리는 것이라는 어느 선배의 말에 용기를 얻은 덕분입니다”고. 필자는 그의 겸손과 겸화와 겸양이 참 좋다.
그럼, 본격적으로 전시 작품을 보자. 그는 전시 제목을 ‘선비를 생각한다’로 정한 이유를 “공정과 정의가 실종되고 보편타당한 상식이 웃음거리가 돼버린 혼탁한 사회일수록 맑고 순일한 정신과 절조가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중 필자의 눈을 매료시킨 작품들이 있어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악악(諤諤)’이다. 거침없이 바른말을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기(史記) 권68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오는 ‘千人之諾諾不如一士之諤諤-1000명의 아첨하는 사람보다 곧은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한 사람이 낫다’는 말에서 유래했다.
두 번째는 ‘인언(人言)’이다. 그는 ‘此是砒霜之別稱也 人之言云劇毒 豈不駭愕哉? 務必謹嘿慎言-이것은 비상의 별칭이다. 사람의 말이 극독이라니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마땅히 침묵을 지키고 말을 삼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을 합하면 ‘믿을 신(信)’이 된다. 믿을 신(信)은 필자의 이름 끝자이기도 하다. 사람의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사람의 말은 신뢰다. 그래서 지금 그 작품은 필자의 사무실에서 매일 필자를 지켜보고 있다.
세 번째는 ‘여지하 여지하(如之何 如之何)’이다. ‘子曰 不曰如之何如之何者 吾末如之何也已矣-공자께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하고 고심하고 궁리)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던 내용으로 논어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살면서 난제에 부닥쳤을 때 요행을 바라지는 않았던가? 궁극에 이를 때까지 철저하게 고민하고 궁리했던가?’ 작품 하나하나가 필자의 내면에 깊은 울림과 반성과 성찰로 다가왔다.
한글 작품도 있었다. ‘남의 길에서 사는 것은 죽는 것이고, 나의 길에서 죽는 것은 사는 것이다.’일본 에도시대의 시인 마쓰오 바쇼의 말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필자 나름 제멋대로(?) 해석을 해보았다. ‘자신의 땀과 노력과 힘으로 사는 것은 완전한 삶이오, 타인의 땀과 노력과 힘으로 사는 것은 불완전한 삶이다’고.
필자는 서예를 잘 모른다. 서체를 평가할 수도 없고 서체의 아름다움도 볼 줄 모른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 필자가 좋아하는 시문과 내용에만 눈이 갔다. 다만, 그가 위와 같은 선비의 자세와 절조에 대하여, 그리고 선비를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써 내려간 작품은 그의 평소 생각과 그의 평소 언행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올곧음이 참 존경스럽다.
그래서 그런가? 김병기 서예가는 담연 임철순의 서예에 대해, 중국 청나라 말기 황준헌의 혁명적 발언이었던 ‘我手寫我口(아수사아구)-나의 손은 나의 입을 쓴다’에 빗대어, ‘我手書我意(아수서아의)-내 손은 내 뜻을 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