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종영한 tvN 드라마 ‘정년이’는 1950년대 인기를 끌었던 여성 국극을 배경으로 삼아 화제를 모았다. 주연을 맡은 김태리 신예은 등이 직접 소리를 한 국극 장면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은 문소리가 부른 3분여의 ‘추월만정’이었다.
정년이의 어머니 서용례 역으로 특별출연한 문소리는 ‘정년이’ 10화 엔딩에서 떡목(소리가 탁하고 텁텁해진 상태)이 된 정년이에게 소리에 관한 일깨움을 주기 위해 일출을 바라보며 ‘추월만정’을 부른다. ‘심청가’의 한 대목인 ‘추월만정’은 인당수에 빠졌다가 환생한 심청이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이다. 판소리 중 가장 느린 장단인 진양조 장단에 구슬픈 계면조로 불러야 하므로 소리꾼들도 힘들어하는 대목이다.
최근 문소리를 만나 ‘추월만정’에 대해 물었더니 “1년간 1000번 넘게 연습했다”며 후일담도 전해줬다. 먼저 그녀와 소리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종로3가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소리에 끌려 한 건물 옥상에 있는 연습실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지금은 작고한 판소리 ‘수궁가’ 무형문화재 남해성 명창을 만난 것이다. 문소리는 뭔가에 끌리듯 자신을 예뻐해 준 남 명창에게 1년 반 동안 ‘수궁가’의 반 정도를 배웠는데, 모든 것을 잊고 소리에만 전념하는 산공부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소리에 빠졌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연극을 하면서 소리와 멀어지게 됐다.
‘추월만정’에 담긴 진정성은 이후 사연과 관련이 있다. 몇 년 후 문소리가 무대에 선 연극 ‘슬픈 연극’을 보러 남 명창이 찾아온 것이다. 영화 ‘오아시스’(2002)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역으로 출연한 문소리를 본 남 명창이 영화관에서 벌떡 일어나 “우리 소리가 저렇지 않다”며 고함을 질렀다는 일화도 그때 들었다. 문소리를 걱정한 남 명창은 눈물을 흘렸고, 영화 데뷔 이후 바쁘게 지내면서 연락이 뜸했던 문소리도 죄송함과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20년 남 명창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코로나19가 막 시작하던 때여서 문소리는 안타깝게도 조문을 갈 수 없었다.
“‘정년이’란 작품을 하면서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다. 선생님 가르침을 담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작품이었다. (소리를 하는 장면은) 한 장면이었지만 시간이 있었다면 1년이 아니라 3년이라도 진짜 더 연습하고 싶었다.” 슬픔과 한숨으로 떡목의 빈 소리를 채운 문소리의 ‘추월만정’이 더 깊게 다가온 이유가 있었다.
이원 서울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