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뇌영양제를 처방해달라는 환자분이 있다. 나는 그런 약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른 병원에서는 처방해주는데 왜 여기선 처방을 안 해주느냐고 물으면, 머리 좋아지고 부작용도 없는 뇌영양제가 있다면 당장 나부터 먹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약은 없다. 우리 뇌를 살찌우는 방법은 딱 하나, 뇌를 열심히 쓰는 것뿐이다.
나이가 들면 몸에 근육이 줄어들듯 뇌도 줄어든다. 하지만 중년기에 근육 운동을 시작하면 근감소증을 줄일 뿐만 아니라 근육량을 늘릴 수 있다. 뇌도 마찬가지다. 근육처럼 안 쓰면 빠지고, 쓰면 더 강해진다. 개인적인 주장이 아니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영국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UCL)의 맥과이어 교수는 2000년부터 런던 택시기사들의 뇌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택시기사들의 뇌 속에 있는 해마가 일반인에 비해 컸다. 해마는 기억을 담당하는 곳인데 왜 기사들은 커진 걸까? 교수는 뇌를 많이 썼기 때문이라 단언한다.
런던은 세계에서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 도시다. 아울러 주요 관공서 관광지 공연장 전시장이 도심에 밀집해 있고 도로가 얽히고설켜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혼잡 상황에서도 귀신같이 길을 찾아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가는 존재들이 바로 런던 택시기사들이다.
런던 택시기사들은 수험 준비에 4년이 걸리고 합격률은 절반 밖에 안 되는 아주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야 기사 면허를 받는다. 합격을 위해 런던 중심가의 모든 곳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암기해야 한다. 명소는 물론이고 새로 생긴 펍, 신호등, 건물 순서까지 알아야 하니 암기할 장소만 수만 개다. 뿐만 아니라 목적지까지 최적의 경로를 잡아야 한다. 주중 주말 시간대의 교통량이나 돌발 상황까지 감안한 우회도로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시험 준비를 위해 런던 시내에는 바이크를 몰며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내비앱’이나 GPS만 켜면 길은 쉽게 찾는데 굳이 이러는 이유는 뭔가? 최고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런던 택시, 일명 ‘블랙캡’은 GPS를 쓰지 않고 ‘머리를 쓰는’ 전통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피나는 노력을 4년 동안 하고 시험에 합격한 후에도 GPS 없이 운전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뇌가 변한다는 것이다.
깜짝 놀랄 만한 연구다. 성인의 뇌가 자란다고? 인간의 뇌는 성장기를 거치며 몸처럼 자란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정점으로 퇴행이 시작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머리가 나빠지고 뇌 부피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겼다. 그런데 어른이라도 노력하면 뇌가 자라고 더 좋아진다고?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냥 자라는 것은 아니다. 피나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있어야 뇌가 자란다. 기사들의 수험 준비 기간은 대략 4년이나 되었다. 후속 연구를 통해 기사 경력이 오래될수록 해마는 더 커진다는 사실도 나왔다. 1만, 2만, 3만 시간 … 계속 노력하면 뇌는 더 자란다는 의미다. 하지만 은퇴하면 뇌는 다시 줄어들었다. 이는 조금 슬픈 소식인데 우리가 노력을 멈추는 순간 뇌는 원래의 정해진 길, 퇴행이라는 내리막길로 굴러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같은 런던에서 일하는 버스 기사의 뇌는 어떨까? 큰 변화가 없었다. 왜 그럴까? 한 번 생각해보시라! 버스는 정해진 노선을 이용해서 다니므로 택시 기사에 비해 길찾기 같은 도전적인 상황을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종 직업인 우버 기사는 어떨까? 따로 연구는 없지만 뇌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우버 기사들은 ‘내비앱’이 시키는 대로 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퇴근 길에, 먼 곳으로 여행을 갈 때 내비앱에만 의존해 차를 운전하는 독자 여러분의 뇌는 어떨까? 물어보나 마나 ‘정상적으로’ 퇴행하고 있을 것이다. 평균 속도로 퇴행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GPS와 ‘내비’라는 문명의 이기가 나오기 전에 여러분은 어떻게 운전하고 다녔나? 일단 차 안에 지도 하나 정도는 있었다. 장거리 여행을 갈라 치면 지도를 펼쳐놓고 목적지로 가는 고속도로를 정하고 진출입점, 나들목, 일반도로 선정, 좌·우회전 지점, 날씨 정보나 출퇴근 시간 등등을 고려한 경로 설정을 하고 시동을 걸었다. 마치 런던 택시기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사정은 달라졌다. 시동부터 걸고 내비앱에 입력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 다음부터는 내비앱이 시키는 대로 운전한다. 지도를 이용한 여행자는 다음 번 여행에서는 지도 없이 운전할 수도 있지만 내비앱 이용자는 갈 때마다 내비앱의 말을 들어야 한다. 적극적인 탐험가의 지위에서 굴러 떨어져 내비앱의 말을 잘 듣는 착한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우리 뇌는 더 많은 자극·경험·생각·발상을 원하는 기계로 타고 났다. 우리가 아는 한 이런 구조물은 이 넓은 우주를 통해 단 하나 밖에 없다. 이토록 특별하고도 소중한 우리를 살찌우는 방법은 바로 뇌를 쓰는 것이다.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집중하며 매일매일 뇌를 쓰자. 나의 노력이 뇌를 키우는 양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