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피멍을 마스크로 가린 여성이 말했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늘 제자리예요.”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매 맞는 여성 증후군(battered women syndrome)’, 가스라이팅의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주변에서 가정폭력 사건 접수부터 하라고 조언했지만 본인은 그럴 의사가 없다. 자신이 잘못했으니 그런가 보다, 맞을 만해서 그랬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지 않나요? 면담 초기에 나에게 되묻곤 했다. 가스라이팅은 자기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든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거나 이를 인식하고 대처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심리적 공황상태였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때 강제 격리수단으로 구속 등이 있지만, 한국의 가정폭력 사범 구속률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녀의 슬픈 표정을 만날 때면 어릴 적 동남아에서 목격한 코끼리가 오버랩 된다. 집채만 한 몸집이 작은 기둥의 허술한 밧줄에 묶여 있었다. “코끼리가 힘이 센데 밧줄을 끊고 숲으로 달려가지 않아요?” 질문에 가이드는 이렇게 답했다. 코끼리는 길들여야 말을 잘 듣고 아기 때부터 묶어 키우면 탈출할 생각을 못 한다고. 어린 나이였지만 어린왕자의 ‘길들임’과 다른 뉘앙스가 불편했던 기억.
요즘은 동물의 행동 훈련으로 긍정적 강화를 활용하지만, 아직까지 동남아 일부 지역에 ‘파잔’이란 의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잔혹한 성년식, 아기 코끼리가 두 살이 되면 어미와 강제로 분리한다. 엄마와 떨어진 아이의 분리 불안을 어느 논문에선 눈 가리고 총살형 당하기 직전의 공포에 비유했다. 동물이라고 사람과 다를까. 코끼리를 크러시 박스(crush box)라 불리는 좁은 나무 공간에 가두고 사슬과 밧줄로 결박하고 때린다. 그때의 코끼리 울음은, 뿌우우 부부젤라의 비명과 클라리넷의 슬픈 선율을 섞은 것처럼 들린다.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무기력을 학습하는 세뇌의 과정. 그렇게 새끼 코끼리는 관광용 코끼리가 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가스라이팅 혹은 그 경계에 노출되어 있다. 가스라이팅은 미국에서 ‘2022년 올해의 단어’로 뽑혔고 일상어로 널리 사용된다. 최근 미 대선후보 해리스는 트럼프의 가스라이팅에 미국인이 지쳐간다고 했다. ‘금투세 폐지’를 요구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민주당 토론은 국민 가스라이팅”이라 말했고, 자신의 딸을 가스라이팅 했다고 10대 소년을 흉기로 찌른 엄마가 체포되었다. 가스라이팅은 심리적인 지배의 의미였지만 최근에는 속임수라는 뜻이 더해졌다.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넘치는 사회상이 반영되었으리라. 서열화 된 우리 사회는 권위자의 가스라이팅에 주목하지만 사실 학교나 직장 내에서의 따돌림, 가족이나 연인 관계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 흔하다.
사람은 절망하지 않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희망을 가지려 한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 믿고 싶은 바람, 그 희망의 미끼는 누구를 낚는 걸까. 거짓말이 통하는 이유는 거짓말에 속고 싶은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매 맞는 여성 증후군’의 피해자는 신고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탈출하는 건 영화에서나 쉬울 뿐, 현실에서는 크러시 박스 안에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주체성을 상실한다. 얼마 전 남편을 보호자 자격으로 불러 얘길 나눴는데 어이없게도 사랑이라 말한다. 어디까지나 아내를 위한 행동이라고, 잘 되라고 걱정해서 그랬다고 한다. 실제로 가해자의 상당수는 치밀하게 계산한 행동이 아니라 잘못된 신념구조에 기인한, 무의식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한 결과다.
가해자를 만나고 가스라이팅 당한 게 피해자의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스토킹과 달리 가스라이팅이 지속되는 데에는 피해자의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상호작용하는 비정상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과도한 인정의 욕구와 의존성이 삐뚤어진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그동안 내가 만난 가스라이팅 피해자들은, 손해 보더라도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관계를 유지하려는 강박을 갖고 있었다.
지금 당장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벗어나려는 삶을 살 수 있다. 상대에 굳이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만 깨달아도 관계의 지형이 변화한다. 내 인생은 이 사람이 없어도 계속될 거라는 믿음, 상대와 멀어지는 소외와 불안을 지나치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의견이 다를 때는 그건 당신 생각일 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표현해야 한다. 상대를 불편하게 할 줄 알아야 상대를 편하게도 해줄 수 있다. 어쩌면 삶은 여행이라기보다 순례에 가깝지 않을까. 특정 장소로 간다기 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지향하는 바를 알고 계속 나아가는 발걸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