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연합군은 1940년대 한 동네(Block)를 날려 버릴(bust) 위력의 폭탄을 개발했다. ‘바로크 문화’의 중심 독일 드레스덴은 2~4t짜리 블록버스터 수천 발을 맞고 잿더미로 변했다. 사망자만 1만8000명이 넘는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앞둔 연합군은 난제에 직면했다. 지상전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독일군 지하 벙커(Bunker)를 파괴해야 하는데 블록버스터는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이때 영국 공학자 반스 월리스가 땅을 뚫고 들어가는 폭탄 개발을 제안한다. 벙커버스터의 원조인 톨보이(Tallboy)가 탄생한 배경이다. 중량 5.4t의 톨보이는 시속 1200㎞로 낙하해 지하 18m를 파고 들어가는 위력을 과시했다. 땅이 흔들릴 정도로 위력이 커 ‘지진 폭탄’으로 불렸다. 톨보이는 독일이 자랑하던 잠수함 유보트 기지와 순양함까지 닥치는 대로 파괴했다.
원자폭탄 개발로 명맥이 끊길 뻔했던 벙커버스터는 1990년 이라크전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군은 이라크 지하 방공호를 뚫기 위해 전폭기 탑재가 가능한 2.3t짜리 벙커버스터를 개발했다. 탄두 무게는 가벼워진 반면 관통력은 6m 두께 철근 콘크리트를 뚫을 정도로 강해졌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은신처를 초토화한 무기가 바로 2m 두께 콘크리트 벽을 관통하는 벙커버스터였다.
1일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고중량 초위력 탄도미사일 ‘현무-5’가 처음 공개됐다. 길이 약 20m 원통형 발사관에 담겨 등장한 현무-5 탄두 중량은 현무-4(2t)의 4배인 8t에 달한다. 북한 지휘부가 은신한 지하 벙커를 파괴하는 대량응징보복(KMPR) 수단 중 하나다. 관통력은 100m를 넘는다. 현무-5 탄두 중량을 줄이면 사거리가 3000∼5500㎞대로 늘어난다고 한다.
정부가 현무-5를 공개한 이유는 북한의 무력 도발에 경고하기 위해서다. 북한이 핵 버튼을 누르는 날이 ‘김정은 정권 종말의 날’이란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북한은 앞으로도 핵 능력을 과시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할 일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 긴장을 완화하는 한편 작은 오판이라도 하지 않도록 미·중·일과 외교적 압박을 하는 것이다. 무력 충돌위험을 최소화하는 철저한 안보태세는 기본이다. 무기의 가장 큰 역할은 전쟁이 아니라 전쟁 억지다. 실제로 칼을 휘두르는 건 하수다.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이노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