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나이테를 위하여!

권애숙 시인

  • 권애숙 시인
  •  |   입력 : 2024-08-20 18:53:18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녀석들은 언제 봐도 특별하군요. 긴 목과 머리, 짧은 발과 꼬리, 둥근 등과 바닥에 납작 붙은 배, 어디를 들춰봐도 따로 색을 칠하거나 모양을 만들어 넣지 않았습니다. 목공예 공방을 하는 집안 아우에게서 거북이 한 쌍을 구입한 적이 있습니다. 몇 년째 책상 위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나무의 나이테들입니다. 거북이의 모양대로 깎아만 놨을 뿐인데 거북이의 눈 코 입은 물론 걸음의 방향까지 살려냅니다.

물에 씻어 닦아 놓고 보니 촘촘한 계단 같기도 하고 등고선 같기도 한 나무의 나이테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명선이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나이테는 말 그대로 나무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겠지요. 하지만 나무의 종류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르고 그 모양도 다르다고 합니다.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 수종도 있고 태생과 주어진 환경에 따라 그 성장 역사도 다를 것이니 나이테를 통해 다만 나무의 삶을 짐작할 뿐 다 알 수는 없겠지요.

한때 교정의 회화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면 환한 꽃들 속에서 우는 꽃을 찾을 수 있을까 한참을 서성거리기도 했습니다. 우는 꽃이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 나무들 세상도 인간 세상만큼이나 복잡하고 그 삶이 다양하겠다 생각했지요. 얼핏 한 곳에서 나고 자라 단순하고 지루하겠다 싶지만 나무들도 우리가 모르는 자신들의 삶을 구구절절 살아내고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웃고 울고 아프게 꽃들을 피우며 시들다 떨어지면서요.

나이테가 어디 나무에게만 있겠는지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의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자신은 물론 주변까지 변하게 할 테니까요.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고 묵묵하게 걸어갈 때 우리는 기어이 그곳에 당도할 것입니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꿈꾸는 삶이 만든 나이테는 생의 구간을 특별하게 이어가겠지요. 누군가의 나이테는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풍요롭게 풀리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나이를 잊고 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물리적인 숫자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그때그때 만나는 시간과 공간에 열렬하고자 했습니다. 하루를 사흘처럼! 요즘엔 이런 작심까지 합니다. 그렇다고 자지도 쉬지도 않고 생산적인 일에만 시간을 다 쏟자는 것은 아닙니다. 남은 시간을 좀 더 특별하고 뜻깊게 보내자는 것이지요. 나이를 의식하니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결국엔 생의 막바지로 가는 발자국들을 신중하고 의미 있게 찍자는 뜻 아니겠는지요.

동네 정자나무 아래 나무 이상의 나무들이 둘러앉았습니다. 여름 내내 수군수군, 세상을 펼치고 걱정하며 꽃도 잎도 다 진 속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무든 사람이든 자신을 격려하며 어느 지점까지 당도한 이들은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다양한 진폭이 풍요롭습니다. 가끔 사방이 아득한 곳에서 방향을 못 잡고 주춤거리기도 했겠지만 오히려 그 부분이 방점으로 찍혀 삶의 전환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픈 다리를 두드리는 고목의 나이테들은 믿을만합니다.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어머니 사랑해요’라고 쓴 글을 가슴에 붙이고 푸짐한 고희 상 앞에서 편안하게 웃고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여기까지 당도했는지 한참 세어야 될 만큼 여러 겹의 나이테를 둘렀군요. 좁고 가파르게, 혹은 넓은 문양을 새기며 건너온 우리 시간들을 알기에, 울퉁불퉁한 서로의 나이테를 격려합니다. 시간이 멈추는 그날까지 서로 토닥여주자고 말없이 끄덕였지요. 한참을 쿡쿡거리다 전화를 끊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 우리는 유독 서성거리게 되지요. 완성이든 시작이든 다시 새 걸음을 놓자는 각오일 것입니다. 뜨거운 여름을 견디는 것도, 아름다운 가을 색으로 물드는 것도 세상과 자신을 향한 사랑의 힘이며 농도 아니겠는지요. 나무의 나이테가 거북이의 눈빛으로 다시 살아 오늘도 사방을 흔들 듯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나이테를 두르고 있습니다. 그게 어떤 삶의 흔적이든 누구에겐 교본으로, 역사로 재창조될 수 있을 테니까요.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3. 3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4. 4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5. 5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6. 6‘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7. 7부산 금정구 ‘인구감소지역’ 새로 편입…북구는 ‘인구감소관심지역’
  8. 8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9. 9[사설]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10. 10매표소 오픈런…레드카펫 ★ 보려 외국인 새벽부터 달려왔다
  1. 1100억대 체임 국제신문 대주주, 국감 증인 채택
  2. 2조희대 “국회·대통령의 제청 간섭은 위헌”(종합)
  3. 3송곳검증 벼르더니…교통·시설公도 싱거웠던 시의회 청문회
  4. 4[속보] 여야, 문체위 국감서 ‘암살자(들)’ 공방…국힘 “감독 나와야” vs 민주 “창작 자유 억압”
  5. 5주호영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특례 폐지’ 법안 발의
  6. 6김정호 “부산·경남 맑은 물 공급을 위해 낙동강 수질개선·취수 다변화 해야”
  7. 7‘홈플러스 사태’ MBK 김병주, 국감 불출석 “회사 경영 관여 안 해”
  8. 8여야, 국감서 알래스카 LNG 사업 집중 추궁
  9. 9인사청문회서 "영도다리 핸드레일 예쁘게"… 검증 대신 지역구 민원 쏟아낸 시의원
  10. 10[2026 국감 브리핑] 백종헌 “인력 확보 없이 출발한 통합돌봄 담당자 82%가 겸직, 전담인력 ‘0명’ 시군구는 전체의 66.4%”
  1. 1‘부캉이’는 무태상어 아닌 흑상어…수과원 근접영상 분석 최종 확인(종합)
  2. 2부산 전셋집 1년새 11%↓…매물가뭄 심화에 세입자 울상
  3. 3센텀2지구 속도전…풍산 이전지 주민 경청·토지보상 착수
  4. 4롯데백화점, 업계 첫 외국인 매출 1조 ‘포문’
  5. 5국토부, “가덕도신공항에 적용할 PBD 공법 문제없다”
  6. 6SMR 골든타임 놓치나…"원안위 심사기준 2032년에야 마련"
  7. 7금감원 “AI 해킹 시도 IP 28개 확인”
  8. 8'한국형 녹색대전환'에 1000조 투자…SMR·전력반도체 등 집중 육성
  9. 9부산 극지해양 전문강사 “현장 능력 키워요”
  10. 10부산 청년기업 ‘DPP(디지털제품여권)’ 국내 첫 상용화
  1. 1실속 없는 ‘국제기구 인증’ 혈세 붓는 기초단체
  2. 2‘경영난’ 태종대 집와이어 재개장…이용료 1만 원 낮췄다
  3. 3부산 금정구 ‘인구감소지역’ 새로 편입…북구는 ‘인구감소관심지역’
  4. 4부캉이 떠나도 북항 북적이려면…“원도심 접근성 개선을”
  5. 5기장군수실 1층 이전 ‘없던 일로’
  6. 6전기車 높아진 인기에 예산 동나…부산시, 하반기 1520대 더 지원
  7. 7[속보]부캉이와 '차가운 이별' 맞게될까…흑상어, 수온 떨어지면 바다로 돌아갈지도
  8. 8김해 트램, 예타 대상 신청 재추진…1·2호선 통합 우선
  9. 9부산중수청장 “정치 중립성·수사 독립성 엄격히 지키겠다”
  10. 1060대 부부 피살 용의자, 자전거·피해자 차량 갈아타고 ‘용의주도’
  1. 1김도영 굳히기냐, 힐리어드·오스틴 뒤집기냐
  2. 2롯데, 6위 탈환 사활…3위 싸움 변수로
  3. 3조코비치, 올 첫 우승 눈앞
  4. 4장애인AG 결단식…“金 21개 이상 목표”
  5. 5가을은 놓쳤지만…거인 ‘레·황(레이예스·황성빈)’ 도전은 계속된다
  6. 6“감독님이 먹으라고” 정수진, 내막 폭로…유도회 “선수관리·운영체계 점검” 사과
  7. 7레이예스 200안타 달성에도…롯데, 두산에 4안타 그치며 패배
  8. 8불안한 모레노호 우즈벡전 반등할까
  9. 9‘손흥민 A매치 한국인 최다 골’ 우즈베키스탄에 2-0 완승
  10. 10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인공지능 정렬’ 골든타임 놓치지 말라
국제칼럼 [전체보기]
누구도 법 앞에 국민보다 ‘더 평등’할 수 없다
배지의 실력행사
기고 [전체보기]
전문대학을 소개합니다
상어가 떠난 뒤, 북항에 남겨야 할 것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히말라야의 경고
도청도설 [전체보기]
통행료 면제 명암
논란의 AG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공동선(Common Good)’으로서 간병 복지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지독한 집념이 세운 로컬 자산, 대한도기
사설 [전체보기]
외국인 400만 시대, 부산은 이제 체류형 관광이다
삼권분립 훼손하는 정파적 국감 안 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부자(富者)가 되고 싶다면
드골 대통령과 군복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아트부산, 숫자 이후의 질문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행위별수가제와 인두제, 오해와 진실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무(武)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