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탈의 기원은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조개탈이 증거다. 토종 가리비인 국자가리비에 눈과 입을 닮은 구멍을 뚫었다. 조선시대에는 탈을 쓰고 잡귀를 쫓는 의식을 담당하는 ‘나례도감’이 있었다.
현대식 탈인 가면이나 복면은 정치적 의사 표시 도구로 자주 이용된다. 2015년 11월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노동·농민 정책에 반대하는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렸을 때다. 시위대는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나 가면을 썼다. 경찰의 사진 채증과 캡사이신 최루액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복면 시위는 못하게 해야 한다. (테러 단체인) 이슬람국가(IS)도 그렇게 하고 있다. 얼굴을 감추고서”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우리 국민을 IS와 연관 짓고 ‘복면금지법’ 제정을 요구한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 ‘조커’의 주인공 분장이 인기를 얻은 적도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를 요구하던 반정부 시위대는 조커처럼 새하얀 얼굴에 입술을 새빨갛게 칠하거나 조커와 닮은 가면을 착용했다. 조커는 불평등과 차별에 분노해 악당이 된 캐릭터다. 말뚝이(노비)가 탈을 쓰고 양반을 혼내는 동래야류나 수영야류의 뼈대 역시 지배계층에 대한 풍자와 저항이다.
복면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하는 도구다. 영화 ‘복면달호’ 주인공은 트로트를 부르는 게 창피해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랐다. ‘복면달호’의 TV 판인 MBC 예능 ‘복면가왕’이 4·10 총선을 앞두고 이슈의 중심에 섰다. 지난 7일 예정됐던 9주년 특집방송을 연기하면서다. MBC는 “(숫자 9가) 특정 정당(조국혁신당) 기호(9번)를 연상시킬 우려가 있다”고 해명했다. 당장 조국혁신당은 “입틀막·귀틀막·파틀막에 이어 ‘9틀막’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국민의힘 위성정당 국민의미래는 “MBC가 야당과 짜고 친다”고 공격했다. ‘복면가왕’ 불방 이슈로 조국혁신당을 홍보했다는 의미다.
MBC로선 억울할 법하다. 지난 2월 27일 일기예보 방송에서 파란색 숫자 ‘1’을 사용했다가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제재를 받은 전례가 있어서다. 또 다른 논란을 사전 차단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앞서 선거방송심의위는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법’을 논평하면서 ‘여사’를 붙이지 않았다는 민원이 제기된 SBS에 ‘행정지도’를 의결했다. ‘김건희 의혹’과 조국혁신당을 자꾸 입길에 오르내리게 하는 당사자가 누구인가. 도통 모를 일이다.
이노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