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악진흥법’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전국 5개 지역의 현장 간담회를 개최해 시행령 제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국악 부흥을 위한 발전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악진흥법의 실행으로 국악의 보존과 육성의 안정된 기반이 마련된다면 전통음악의 소비층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한 문화콘텐츠로써 세계인들에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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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지안 지역의 무용총에 그려진 벽화 |
현재 21세기 국악의 한 측면은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현대적 재해석과 다양한 장르와의 융합적 수용을 통해 새로운 시대 흐름과 함께 진화하고 있다. 대중은 이러한 국악의 실험적 또는 과도기적 경향을 더 이상 낯설다고 여기지 않는다.
역사 속 동서양의 문화교류를 살펴보자면 중국 한나라 시절 고대 실크로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의 문화를 비롯한 서역의 문명이 대륙을 통한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해졌고, 당시 한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에 집결되었다. 이렇게 모인 독특한 각 민족의 음악은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필자가 전공한 국악기 피리는 이 당시 서역에서 두루 통용되던 관악기로 실크로드를 통해 고구려 시대 때 한반도에 전해진 후 향악화되어 국악 합주에서 주선율을 담당하고 있는 악기다.
고구려 시대에 중국과 서역의 문화가 어떻게 전해졌을까? 고구려는 한무제가 위만을 멸하고 고조선의 옛 땅에 낙랑군을 설치한 이래 한나라의 극심한 경제적 수탈이 있었던 반면 한나라의 선진문화가 유입되는 창구였다. 이후 미천왕은 313년에 낙랑을 멸망시켜 군사 ·정치적으로 복속시켰으나 문화적으로는 한나라 계통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 이후 고구려는 고분벽화에서 보듯 고구려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고구려의 음악 또한 거문고로 대표되는 본토 음악에 인근 국가였던 한나라와의 접촉을 통해 한의 음악을 간헐적으로 수용했으며, 이러한 한나라 계통 음악의 수용은 낙랑의 복속(313년)을 통해 고구려음악으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북중국을 통한 외래음악인 서역 음악과 악기를 수용하여 고구려 음악은 수준높은 음악으로 발전했다. 7세기에는 수나라 궁중 연회에 중앙아시아 및 인도 등 주변국의 우수한 음악 사절단으로 고구려악이 초청될 만큼 고구려의 고유하고 융성한 음악 문화를 꽃피웠던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이후 수나라의 칠부기와 구부기, 당나라의 십부기에 포함되어 활발한 교류를 했다. 이것은 우리나라 융복합 음악의 시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나라를 복속시켜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기존 본토 음악으로 향악화하여 고구려악으로 중국의 왕실 연회에 초대되고 주변 나라와 교류할 만큼 높은 수준이었음이 기록에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구려악은 일본의 궁중 아악에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 아악에서 고마가쿠라 불리는 고려악은 7세기 무렵 고구려악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음악에 발해악까지 더해 고려악 고마가쿠로 통칭하며 우방악으로 분류되었다. 현재까지 일본 궁중 아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옛날 대륙을 통한 민족 간의 문화적 상호작용과 전파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그 나라만의 문화적 배경과 전통에 뿌리를 두고 독자적인 문화로 고착화 되었다. 2024년 국악진흥법의 시행으로 지속적인 21세기 디지털 문명의 문화교류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변화 발전을 할지 그 모습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