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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도주 대사’

  • 이노성 기자 nsl@kookje.co.kr
  •  |   입력 : 2024-03-12 19:32:24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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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장 제정은 파견국 국가 원수가 신임 대사에게 수여한 신임장을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전달하는 절차다. 칠레 대통령은 2022년 9월 이스라엘 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이례적으로 거부했다. 요르단강 서안에서 10대 팔레스타인 청년을 숨지게 한 이스라엘군을 비판하기 위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항의한 것이다. 외교관이 범죄 의혹을 받아 주재국을 곤란하게 만든 적도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18년 부임한 주한콜롬비아 대사에 대해 “전쟁 범죄 개입과 인권운동가 사찰 혐의가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콜롬비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수사 외압 의혹 사건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신임장 원본 없이 지난 10일 출국했다. “(대통령의) 수여식 일정을 잡기 어려워 사본을 챙겨갔다”는 외교부 해명은 궁색하다. 오히려 “범죄 혐의자를 해외로 도피시켰다”는 야당 비판이 더 와 닿는다. 이 대사가 누구인가. 채 상병이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다 순직한 지난해 7월 국방부 장관이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수사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고발당한 인물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올해 1월 국방부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했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이 전 장관 ‘카드’를 버리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여부는 몰랐다”고 주장했다.상식 밖이다. 국가대표 선수도 범죄에 연루되면 선발하지 않는 세상 아닌가.

여론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수사받는 인물을 외교관에 임명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지난 1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외교·안보에 전문성 있는 사람이 범죄 혐의자 이종섭만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법무부가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서둘러 해제한 것도 논란이다. 일반인의 출국금지 해제는 바늘구멍 통과 만큼 힘들다. 이 신임대사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MBC 기자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고 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란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했던 “왜 나만 갖고 그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주재국 원수는 신임장을 제정할 때 메시지를 내놓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연말 이도훈 신임 주러시아 대사에게 “(러시아와의 관계가) 파트너십 궤도로 복귀할지는 한국에 달려 있다”고 경고했다. 호주 총리가 이 대사를 만나며 “수사 잘 받으라”고 위로를 건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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