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이슬람을 중계하는 지중해 무역으로 부유해진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발상지로 문화와 예술이 융성했으나 군사력이 약했다. 영국과의 백년 전쟁을 통해 단련된 프랑스는 화약을 장착한 신식무기 청동 대포를 앞세워 이탈리아를 수직으로 관통해 남부 나폴리 왕국을 차지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프랑스왕 샤를 8세를 비롯해 군인 상당수가 신종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매독이 퍼진 것이다. 전염병으로 희생자가 속출하고 사망자가 늘어나자 군대의 사기가 꺾였다. 이때 이탈리아 북부에서 여러 나라가 모인 반프랑스 동맹이 결성됐다. 독 안에 든 쥐처럼 고립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샤를 8세는 서둘러 나폴리를 떠나 프랑스로 철수했다. 샤를 8세는 프랑스 군인 외에도 여러 나라의 용병을 고용해 침략했는데 전쟁 후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매독을 퍼뜨렸다. 어찌나 감염성이 높았던지 유럽 인구의 20% 정도가 매독에 걸렸다고 한다. 유럽을 점령한 매독은 이후 수십 년 만에 인도 중국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매독은 주로 성관계를 매개로 전파되는 세균성 질환이다. 매화꽃 모양의 피부 궤양이 생겨서 ‘매독(梅毒)’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매독의 기원은 두 가지인데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후 1493년 콜럼버스 일행을 통해 들어왔다는 신대륙 기원설과 이전부터 있었다는 유럽 내재설이다. 최근에는 아메리카에만 사는 동물, 라마와 인간 사이의 수간으로 전염병이 옮겨졌다고 알려져 신대륙 기원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감염병은 동물에서 사람으로 넘어온 경우가 많다. 농경을 시작하면서 가축을 길렀고 가축이 가진 세균과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병을 일으켰다. ‘총균쇠’의 작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홍역 결핵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이 동물에서 기원해 사람에게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매독같이 신대륙에서 구대륙으로 넘어온 병도 있지만, 다수의 감염병은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이동했다. 오랫동안 많은 종류의 가축을 길렀던 구대륙이 대륙 간의 균 교환에서 내성을 가져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콜럼버스의 교환’이라 한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후, 신대륙과 구대륙 간에 일어난 광범위한 접촉으로 감염병도 함께 교환되었다.
한번 들어온 매독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을 괴롭혔다. 매독은 트레포네마 팔리둠이라는 길쭉하게 생긴 세균이 원인인데 초기에는 증상이 약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심장 간 뇌 눈 등에 침범해 장기 손상과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킨다. 코뼈가 무너지고 정신착란까지 일으키는 끔찍한 증상을 일으켜 매독을 성적 문란에 대한 신의 천벌로 생각했다.
매독에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예전에는 수은을 사용했다. 다른 금속과 달리 상온에 유일하게 액체로 존재하는 수은이 매독에 특효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수은은 중금속 독성물질로 장기간 사용하면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20세기에 들어와 비소를 이용한 살바르산(606이라고 불린 신약)이 나와 매독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고 1940년대 페니실린이 도입되면서 인류는 악명 높은 매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생제의 등장으로 거의 사라진듯했던 매독이 최근 다시 확산하고 있다. 처음에는 일본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유행했으나 우리나라도 감염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에 집중하느라 소홀한 틈을 타 각종 SNS와 데이트 앱 등을 통해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의 증가를 매독 확산의 원인으로 꼽는다.
봄의 전령사 매화가 활짝 피었다. 요즘 스마트 폰에는 주말 나들이 갔던 사람들이 올린 매화 사진이 속속 올라온다. 매화를 보고 매독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지만, 부끄러운 병이라 생각해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매독은 단 1회 페니실린 주사로 치료할 수 있다. 혹시 페니실린에 부작용이 있으면 테트라사이클린 계열의 다른 항생제도 있으니 의심이 들면 빨리 치료받는 게 좋다. 이쁜 꽃이 성병의 이름에 사용되었다니 산뜻한 매화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