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3일에 종료된 기획 전시 ‘소사공단: 기계를 짓는 공장’은 전시장 입구의 대형 패널에 소개되어 있듯이 “한국 근현대산업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호명되지 못한” 소사공단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호명했다. 서울-인천을 잇는 경인로 한복판에 있던 이 공단은 1970년대에 건설되어 당시 수출 역군이던 제조업 회사들의 기계를 만들던 곳인데, 이 공단의 마지막 공장인 소사본동 134번지 공장의 2023년도 철거를 앞두고 폐공장에 대한 면밀한 탐사와 예술적 형상화 작업이 추진되었던 것이다. 시각예술가와 사진작가, 기록전문가, 건축가, 영화감독, 그리고 관련 연구자와 출판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Factory134 장소기억연결 프로젝트’ 팀이 사진과 회화, 판화, 영상, 그래픽 디자인, 설치미술, 그리고 지도 제작과 아카이빙, 구술 채록 등 다채로운 수단과 시선으로 외진 음지의 공간과 그곳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 전시가 개최된 부천아트벙커B39는 원래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곳으로, 다이옥신 배출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면서 문을 닫게 된 후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쓰레기 소각장이 주는 생경하고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 철거되어 버린 공장의 자취가 마치 유령처럼 부활한다.
이처럼 매우 ‘장소특정적’으로 구현된 전시는 이 공장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공장 내부를 그린 큼지막한 그림, 기계 부품들의 먼지와 기름때를 이용해 탁본을 뜬 판화작품들, 그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사진과 그들이 사용하던 안전모와 작업복, 장비, 신상명세서, 작업일지, 사보와 노보, 설계 도면과 서류들을 위시한 ‘공장의 시간’이 분주히 펼쳐진다. 이 건물에서 가장 깊고 높은 공간인 벙커(옛 쓰레기 저장조)의 벽에는 건물의 소멸과정과 참여 작가들의 활동을 기록한 영상이 프레스코화처럼 투사되고 벙커 바닥에는 공장에서 주워 온 갖가지 물건들이 아이들 장난감들처럼 놓여 있다. 벙커를 지나 외부공간인 에어갤러리에 이르면 공장에서 쓰던 목형(木型)을 이용한 3층 높이의 조형물과 커다란 도면을 보게 된다. ‘공장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질서 속에 재배치된 사물들은 마치 폐기를 거부하는 듯 보기 드문 예술적 후광을 발하고 있다. 이 전시가 보여주는 것은 그저 공장의 역사라기보다는 그 안팎에서 이루어진 삶의 역사다. 전시 프로젝트팀은 경인철도 주변과 소사읍 주변 지역을 두루 답사하고 항공사진까지 동원해 지역의 발달 과정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처럼 아카이빙과 역사 탐구, 예술적 재현을 결합한 이 전시는 여러 기억들의 단층을 복합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오래전에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말했던 의미의 ‘고고학적’, 혹은 일본 민속학자 곤 와지로가 말했던 ‘고현학(考現學)적’ 탐구에 근접해 있다.
이 전시는 건물 전체에 걸쳐 꽤 광범위하게 꾸려져 있는데, 전기실 안쪽에 있는 구석진 공간에 놓인 민경은 작가의 ‘또 다른 존재들에 대한 기록’이 특히 인상적이다. 공장이 철거된 후 공장 곁 화단과 빈 땅에 자라난 식물들을 채집하고 기록하여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김은희 작가의 광물 채집과 함께 배치한 전시공간은 우리 삶과 역사에 대한 발언으로 읽힌다.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시간’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안내 패널은 공장이 철거되어도 삶은 계속되며 인간과 사물과 공간,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 전체가 공생관계 속에서 생명의 연쇄를 이루어간다는 심원한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이와는 약간 결이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삶의 뒤안길에서 움트는 새싹은 끝이 또 새로운 시작이며 우리 모두의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식의 생물학적 순환을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인간의 삶은 확실히 끝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의 사후에도 꿈틀대는 새 생명의 존재는 우리가 아무리 바둥대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막을 수는 없다는 진리를 드러낸다. 인간의 불멸성이란 인간이 확실히 죽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계처럼 끝없는 반복만이 진행될 것이다. 오로지 개별적인 자기 자신으로 태어나고 죽는 인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명은 영원하다. 하지만 오직 필멸의 존재만이 불멸을 논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정된 시간 내에서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통해, 그리고 과도한 의미 부여와 배타적인 기억을 통해 바람을 거슬러 배를 저어가듯이 필멸에 저항한다. 역사란 바로 이처럼 불멸을 추구하는 속절없는 인간들과 이들의 자취가 서린 유산/사물들이 펼치는 이야기다.
산업화 시기 노동자들의 궁색한 삶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기에 정성껏 기억되어야 한다. 내게는 이 전시가 폐기된 옛 공장과 그 주역들, 다시 말해 우리의 고단했던 과거를 결코 잊혀서는 안 될 불멸의 경지로 드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우리는 이렇게 속절없이 불멸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