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진 잡목 사이로 낮은 가옥들이 보인다. 머리 위로 고가다리가 놓였고, 산자락에는 소담한 논밭이 늘어졌다. 굽은 실개천이 내림길을 따라 흐르고 있다. 마을 뒤쪽으로 달음산 고개가 있어서인지 드문드문 등산객이 산길로 향한다.
지옥마을이라 불렸던 비운의 땅, 강제징용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은 오지 마을의 옛집들이 그대로다. 일명 눈썹처마를 단 주택들이 산언덕 가장자리와 비탈진 땅에 다랑논처럼 다닥다닥 내려앉았다. 의도적으로 서열을 배치한 듯 일본인 고위직의 적산가옥이 가장 높은 곳에 지어졌고 그들 간부 사택 아래로 한국 노역자들의 살림집은 더 낮게 더 작게 담을 붙여 놓았다. 한때 100여 가구가 빽빽이 거주하며 번성했던 적도 있다지만 이제는 옛말이 되어 버렸다.
골목길 공터 한쪽 평상에 호호백발의 할머니 서너 분이 모여 있다. 모두 광부의 미망인이라 했다. 옛일을 물었으나 가물가물한 기억에 애매한 답만 오간다. 남은 마흔여 명의 주민은 대부분 외지에서 들어왔거나 광복 이후부터 거주했기에 슬픈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물다. 오히려 광산의 전성기를 경험한 광부 부인들은 돈벌이가 잘되었던 시절을 기억하며 이곳을 황금의 땅으로 인식한다.
누가 광부가 되는가. 식민통치 때는 억울하게 갱도로 끌려갔으나, 세상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들이 스스로 광부가 되기도 했었다. 땅 위 세상에서 더는 희망이 없을 때, 독기를 품고 시커먼 굴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더 깊이 내려갈수록 순식간에 생사가 갈라지는 사투의 현장이 기다리고 있는 곳, 그래서 광부들이 일하는 곳을 막장이라고 부른다. 갱도의 맨 끝,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벽, 인생의 절망보다도 더 캄캄한 세상, 긴장을 놓쳐버리면 목숨줄이 끊어지는 곳. 그러니 광산촌 사람들에게 금기어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면 오기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곳도 막장이다. 누군들 막장까지 내려갔던 삶이 없었을까. 내가 아는 박 부장도 딱 3년간 광부로 살았다. 하던 사업이 무너졌고 집은 일찌감치 은행으로 넘어갔다. 네댓 직원들의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발목을 잡았다. 전세금을 찾았고 부인의 반지를 빼냈으며 두 딸의 피아노가 트럭에 실려 나갔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진짜 막장이었다. 그는 검은 바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며 견뎌내었고 기약했던 광부 생활을 마치고 목숨 같은 임금을 쥐고서 당당히 가족을 상봉했다. 지옥도(地獄道) 속에서 채탄 광부로 일한 그 종잣돈으로 지금 그는 아내와 함께 조그만 식당을 꾸려가고 있다.
창작의 고통을 안은 산실을 두고도 작가들은 저마다의 은유로써 이름을 붙여왔다.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서재를 막장이란 말로 표현했다. 어찌 가만히 책상에 앉아 글 쓰는 일을 가지고 목숨이 달린 갱도의 막장과 비교할 수 있을까마는, 막장의 굴을 파듯 생사를 걸고 한 땀 한 땀 글 삽을 파는 글쟁이도 존재하는 것이다. 의지를 갖고 곡괭이를 들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어딘들 막장 아닌 곳이 있으랴.
이런저런 생각이 깊어지는 즈음, 광부 미망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콩나물 국수를 한솥 삶아왔다. 훈훈해지는 인정에 노인들은 저세상으로 떠난 광부 남편 이야기도 웃으며 한다. 바깥양반이 10킬로미터까지 내려가서 지고 온 광석을 물에 걸러 서울 제련소로 보냈다고도 하고, 저 아랫골 광부는 굴속에 빠져 죽었다는데, 그 양반만 죽은 것이 아니고 셀 수도 없었다며 목소리를 낮춘다. 그래도 그 굴 막장이 밥줄이 되어주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후루룩 국수를 삼킨다.
멀리 광부들이 다니던 길을 올려다본다. 살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내리던 고행의 길. 그 길에도 계절마다 꽃이 핀다. 어디 흙 위에서 피는 꽃만 꽃이던가. 녹물 붉던 실개천도 이제 허연 물꽃이 흐르고, 달음산 능선 위로는 노을 꽃이 물들며, 손 흔들어주는 늙은 광부 아내의 머리에는 서리꽃이 피었다. 막장까지 무너졌던 한 여자의 옛 기억도 스멀스멀 골바람 따라 이지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