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암컷 발언’로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킨 최강욱 전 의원은 사과 대신에 항변으로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It’s democracy, stupid)’라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는 ‘자유롭게 비판하고 할 말 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뭐가 잘못이냐’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에 대해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그런 용어를 공개적으로 구사하는 사람이나 집단은 민주주의 공론의 장에서 퇴출하는 것이 세계적인 룰”이라면서 “문제는 민주당”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비하 발언이 잇따랐다. 지난 8월 김은경 전 혁신위원장은 노인 비하 발언으로 우리 사회를 공분케 했고, 최근에는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등의 청년 비하 현수막이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여성 비하 발언까지 터져 나오자 한 장관이 민주주의 공론의 장에서 결코 허용될 수 없는 비하 발언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이런 행태의 온상이 되어버린 ‘민주당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하 발언은 명백하게도 반민주·반인권적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지나치게 둔감하다. 민주와 인권에 대한 도덕적 감수성이 낮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노인 비하 발언이 나왔을 때 즉각 김 전 위원장을 파면해야 했고, 청년 비하 현수막 관련자들에게 바로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미적거리며 실기했다. 최 전 의원에 대해서는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이는 민주당의 정치적 도덕성 수준이 얼마나 저열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민주당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된 후 도덕성뿐만 아니라 당내 민주주의 수준도 크게 낮아졌다. 실제로 건강한 토론과 상호존중·합의의 문화가 없다. 오로지 이재명 대표의 방탄과 정치적 이익에 부합하는 목소리만 일사불란할 뿐이다. 간간이 나오는 반대 목소리는 다수파 세력과 강성 당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시·거부될 뿐만 아니라 ‘수박’으로 비난받기 일쑤다. 게다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공천을 염두에 둔 정치인들은 이 대표와 강성 당원의 눈치를 보면서 방관자로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개딸(강성 지지층)과 친명(친이재명) 유튜버에게 장악된 ‘이재명 사당’이나 다름없고, 이런 추세는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민주당이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는 것은 믿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국민의힘이다. 민주당에 이재명 대표, 친명 세력, 개딸, 친명 유튜브가 있듯이 여당에는 윤석열 대통령, 친윤 세력, 강성 보수, 극우 유튜버가 있다. 거대 양당의 한 축인 국민의힘은 맞은 편에 서 있지만 도덕성과 민주주의 수준이 낮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완전히 같다.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은 가치와 정책의 본질적 내용을 알리고 실천하는 것 대신에 번갈아 가며 비하와 구설수로 도덕성을 추락시키고 사당화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다.
모든 정당에는 정치적 도덕성과 당내 민주주의의 견지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 노선의 실천이 반드시 요구되는데, 이 세 가지는 복지국가 정치의 핵심적 구성요소다.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의 존재를 지렛대 삼아 어느 것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못하기 경쟁에 갇힌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 탓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구조의 정당정치가 지속되면서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는 양극적·착취적 성격을 강화했는데, 경제·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최악의 초저출생, 소득·자산의 불평등 확대, 경제·사회적 양극화 심화는 모두 여기에 연유한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라는 최 전 의원 글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서 조지 H.W.부시 대통령에 맞서 내걸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모방한 것이다. 당시 클린턴 후보의 이 문구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명백하게도 ‘문제는 경제’가 맞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양극적·착취적 경제가 문제의 핵심이다. 당면한 민생의 안정뿐만 아니라 경제·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려면 경제가 포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양극적·착취적 경제체제에서 생겨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최대 과제인 포용적 경제체제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유럽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는데,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구조인 기존 양극적·착취적 정치체제를 포용적인 것으로 개혁하면 된다. 다양한 국민의 의사가 민주적으로 대표될 수 있는 다당제 정당정치 질서를 만들어서 합의제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비례대표는 47석에 불과하지만 ‘위성정당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과반 정당의 출현이 어려운 다당제 정치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
다당제의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포용적 정치 체제는 국민 행복 복지국가를 향한 우리 시대의 지상명령이자 당면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여기서는 정당들이 숙의와 합의에 기반한 정책 경쟁을 하게 되며, 이런 복지국가 정치를 통해 우리는 거대양당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포용적 경제체제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