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이면 백일장 등 여러 행사 진행과 특강 등의 일이 생긴다. 원고 작업도 집에서 하는 ‘집순이’지만 10월의 모든 주말과 3주, 4주 차 평일은 매일 외출을 해야 했다. 11월 중순이 되어 큰 행사와 수업은 얼추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원고를 쓰고 책을 묶는 일이 남았다. 글자로 적고 보니 느긋한 느낌인데, 사실 지금 내 발등엔 불이 떨어져서 활활 타고 있다.
모처럼 책상에 앉아 원고를 붙잡았는데…. 불청객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내 귀를 붙든다. 업둥이로 들어온 다섯 고양이가 교대로 찾아와 울며 다리에 이마를 맞댄다. 멀리서부터 내 방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울면서 오는데 이제는 울음소리만 듣고도 이름을 맞힐 정도가 됐다. 고양이가 오면 금동 은동 동동 장군 멍군 이름을 부르고 쓰다듬어준다. 그러면 17살 고양이, 내 껌딱지 고래는 ‘나만 보라’고 쨍알거린다. 고양이 소리에 귀 기울이다 낮이 다 지난다.
오후 3시를 전후로 근처 여자중학교 학생들이 하교한다. 학교에서 우리 집 앞으로 난 길은 내리막인데 그 내리막은 하교 시간 약 30분간 전쟁터가 된다. 랩 대회에 나갈 기세로 말 시작과 끝마다 ‘존’을 넣어 욕설로 라임을 맞추는, 공격적인 대화가 들린다. 어쩌다 네다섯 명이 일렬로 서서 BTS 노래를 ‘떼창’하면 나도 덩달아 명랑해지기도 한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 노래의 제목이 무엇인가 궁금해 대강 들리는 가사로 검색하게 되는데 그렇게 방심하는 순간, ‘우워어어어어어!’ 알 수 없는 괴성으로 길을 달리는 소녀가 있다.
이 소리들의 정점은 옆집 개 ‘덕순이’의 몫이다. 덕순이는 엄청난 기세의 학생들이 지나는 동안은 조용하다. 그러다 인적이 뜸해지고 소곤거리며 대화하는 여학생 무리가 보이면 반응한다. 자기 집 옥상 올라가는 계단참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다 아이 중에 수상한, 혹은 마음에 드는 애가 있으면 짖는다. 어! 허, 허, 허! 하고. 여자애들은 그 소리에 놀라 꺄―악! 소리 지른다. 그래 놓고 덕순이와 아이들은 ‘즈그끼리’ 즐거워서 크게 웃는다.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건, 매일 이 소리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서로 약속한 것처럼, 오후 3시쯤, 알면서 짖고 알면서 놀란다. 그러니 나는 온종일 이런저런 소리에 귀를 내어주다 곧잘 지치는 것이다. 발등은 이렇게 곱게도 타고 있고. 그렇다면 나는, 오늘도 실패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괴로울 때 곱씹을 소리를 기억해뒀으니.
언제부턴가 생활하며 듣는 이 소리가 먼 훗날 그리워할 소리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이 가능한 시절에 엄마가 내게 전화했다가 우연히 전화에 녹음된 파일을 듣고 깨달았다. “있제”로 시작하는 엄마의 용건들은 시시한 내용이었다. 고양이 사료가 떨어졌다. 집에 한 번 들러라. 주말에 목욕탕 같이 가자. 이 시시한 말을 듣는데 십오 년 전의 건강한 엄마, 엄마가 일하던 세탁소, 아직 살아있던 첫 고양이 봉순이가 한꺼번에 내 눈앞에 찾아왔다. 그립고 또 그리운 장면들, 냄새들, 맛까지. 우연히 듣게 된 소리 하나가 특정 시간을 부르고 나는 그 시간에 잠시 고여있다 나온다. 지금 없는 것들이 한때 내게 있었다. 지금 절절하게 그리운 것들이 한때 내게 흔하디 흔한 일상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을 견딜 수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지만 그렇게 고여있으면서 숨도 고르고, 다음 흘러갈 자리도 생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초량에 가면 ‘망양로 산복도로 전시관’이 있다. 부산의 근현대가 빚어낸 망양로 산복도로 마을의 생활사를 소재로 전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입구에서 전시관까지 이어지는 통로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 ‘동구의 소리풍경’이라는 정만영 작가의 작품이다. 작가가 동구의 거리와 산을 걸으며 녹음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스피커로 들려준다. 내가 아는 소리다. 원고를 붙들고 씨름하면 한밤에 뒷산에서 저 새가 울었다. 그 시간에도 새가 같이 깨어있다고 생각하면 영영 암울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나는 지금, 요즘의 지긋지긋한 생활 소음을 이렇게 글자로 되살려본다. 언젠가 그리워할 것을 알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