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증언에 따르면 ‘인간 소멸’이라는책이 있었다. 인류가 커다란 불행을 겪으며 집단으로 목숨을 잃은 사건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는데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키케로는 그 책에서 인류를 덮친 재해 기록을 읽었다.
당시와 똑같이 반복되는 요즘의 재해를 보면 당시의 ‘인간 소멸’을 어림짐작할 수 있겠다 싶다. 예를 들어 우선 화재다. 최근 삼척, 강릉 산불이나 하와이 산불은 숲을 태우고 도시로 내려와 민가와 건물을 집어삼켰고, 화마가 휩쓴 지역은 온통 잿더미가 되었다. 또 튀르키예 시리아 대지진은 땅을 흔들고 갈라놓아 하루아침에 5만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과 가족을 잃고 거리로 나와 폐허 속에 울부짖는 광경을 우리는 보았다.
이와 함께 지난 3년의 세계적 역병으로 690만 명의 목숨들이 사라졌고 세계 여러 대도시는 봉쇄로 완전히 마비되어 혼돈 가운데 인간이 사라진 유령도시를 방불케 했다. 세계 곳곳을 휩쓴 홍수와 가뭄은 말할 것도 없다. 방글라데시 대홍수로 430만 명의 시민들이 그들의 일상을 잃었고, 동아프리카는 5년 연속으로 우기에 비가 내리지 않아 2760만 명이 물과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소멸’에서 인류 재난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 그 자체였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이라는 것이다. 사기 약탈 강도 납치 살인 방화 등이 있겠지만, 인간발 재앙 중 단연 으뜸은 지금도 그렇지만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만 5500만 명을 넘나든다. 지진이나 화재, 역병이나 물난리가 초래한 인간 소멸이 무색할 정도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끝날 기미조차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죽음과 파괴는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도 진저리를 칠 정도지만, 지금 또다시 새롭게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오랜 종교적 갈등으로, 해묵은 이념논쟁으로, 경제적 패권 투쟁으로 무력 대결은 끝이 없다.
여기에 덧붙여, 결과를 예측할 수 없어 더 두려운 방사능 오염수 해상 방류가 시작되었다.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갈 미래의 인류는 과연 우리에게서 어떤 지구를 물려받게 될지 부끄럽고 안타깝다.
그렇기는 해도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이라는 것만큼이나 명확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존재도 인간이라는 점이다. 인류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게끔 서로 돕는 가운데 국가와 공동체를 이루었고, 함께 재난을 이겨내고 불행에 대처해 왔다. 인류가 발전시킨 모든 기술력은 어느 개인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산물이며, 인류가 쌓은 부와 경제력도 한 개인이 이룰 수 없는 협동과 화합의 결과물이다. 주택 농지 방파제 항구 운하 성벽 도로 하수도와 상수도, 시장에 넘쳐나는 먹거리들 가운데 그 무엇이 어느 한 사람이 홀로 이룬 업적이란 말인가?
인간 소멸의 파국을 피할 방법도 결국 인간이다. 따라서 시민 공동체의 발전, 안녕과 평화를 책임진 사람은 시민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도록 화합을 도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 지도자는 어떻게 화합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키케로는 협동 단결의 여러 방법을 열거한다. 우선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돕겠다는데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다음은 덕이다. 훌륭한 덕을 갖춘 사람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데 존경은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다음은 신의다. 이익이 되리라는 신뢰는 도움을 낳는다. 사람들은 그들이 사랑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자를 원한다.
이와 반대로, 인간들을 동원하는 더럽고 추한 방법도 있다. 그 가운데 많은 독재자가 애용하던 방법은 공포다. 공포를 조장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폭군은 “두려워하기만 한다면 미워해도 좋다 ‘dum metuant oderint’”라는 식으로 시민들의 자유를 빼앗고 폭력으로 시민들을 동원한다. 무력의 권력자는 통치자의 의무를 저버리고 시민들을 노예처럼 부린다. 하지만 불행은 독재자에게도 찾아온다. 공포를 조장한 자도 반드시 두려움에 떨던 시민들을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시민들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를 싫어하게 되고, 싫어하는 자의 패망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독재자의 최후는 사람들의 혐오가 얼마나 큰 불행인지를 말해준다. 누리던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 자유의 칼날들은 더욱 잔혹한 법이다. 따라서 자유민들에게 공포를 야기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일인의 권력이 법을 익사시키고 자유를 질식시킬지라도, 법과 자유는 언젠가 침묵의 심판인들 혹은 무명의 유권자들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키케로는 이렇게 조언한다. 공포를 멀리하고 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얻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