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었던 심장에 혈액을 주입한다. 축 늘어져 있던 심장은 조금씩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강력한 움직임을 되찾아 환자의 몸에 생명을 공급한다. 수십 년 동안 반복하는 수술이지만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뛰는 순간은 언제나 경이롭다. 정지된 심장과 폐의 역할을 대신하던 ‘인공심폐기’의 가동을 이제부터 조금씩 줄여나간다. 이 생명유지장치를 환자의 몸에서 분리해야 심장수술이 비로소 완료된다. 수술이 순조로웠던 만큼 인공심폐기를 조정하는 ‘체외순환사’ 선생의 대답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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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기자 |
자동차의 엔진을 멈추어야 내부의 부품을 수리할 수 있듯이, 심장을 열어보기 위해서는 우선 심장을 멈추어야만 한다. 이때 호흡도 함께 멈춘다. 환자의 심장과 폐를 멈추더라도 생명을 유지하려면 인공심폐기라는 특수한 생명유지장치가 필요하다. 환자에게서 흘러나오는 혈액량과 다시 주입하는 용량을 섬세하게 조절하고, 중간중간 혈액검사를 통해 환자의 산소량, 전해질, 산-염기 대사도 맞춘다. 기계를 통과하는 혈액이 굳지 않게 항응고제를 투여하고, 수술이 끝나는 시점에는 피가 잘 굳을 수 있게 반대되는 작용의 약물도 주입한다. 수술 테크닉만큼이나 인공심폐기의 안정적인 가동은 심장수술에 필수적이다. 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주는 동료가 바로 체외순환사다. 과거에는 심장수술을 하는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교육해 그 임무를 맡겼다. 2021년에서야 흉부외과 학회가 이들에게 처음으로 자격증을 부여하고, 체계적인 관리를 시작했다. 그나마도 보건복지부가 발행하는 국가공인 자격이 아니라, 흉부외과 학회가 발행하는 자격증이다. 그렇다면 2021년 이전에 행해졌던 심장수술에는 권한이 없는 무자격자가 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인가?
‘전문간호사’라는 동료도 있다. 수술보조뿐만 아니라, 환자의 치료과정에 함께 참여해 서로 의논하여 결정하고, 주치의를 돕는다. 짧게는 몇 년에서 십수 년 동안 함께 수술을 해오면서 이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고 움직인다. 이들로 인해 집도의의 손은 4개 혹은 6개가 된다. 이처럼 집도를 맡은 주치의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각자의 역할로 함께 힘을 모아야 심장수술은 가능하다. 이들의 업무량, 스트레스도 상당해 필자의 병원에서도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직한 전문간호사가 최근까지 5명이었다. 외국에서는 PA(Physician Assistant), 임상전문간호사(Advanced practice nurse, APN)등으로 불리는 특수직종이다.
며칠 전, 모 병원에서 전문간호사 채용공고를 내면서 국내에서 아직 공인되지 않은 ‘PA 간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해 병원장이 경찰에 고발됐다. 이 사건과 더불어 ‘의사의 수술을 대신하는 대리의사, 유령의사’ 등의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PA 간호사에 대한 논란이 다시 쟁점이다. 일부 병원에서 행해지는 대리수술, 무자격자의 수술 등은 불법행위로 일벌백계의 엄벌은 당연하다.
현재 의료법상 ‘의료인’이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와 간호사에 국한된다. 그래서 대다수 병원에서는 간호사 중에서 흉부외과 업무만을 전담하는 전문간호사로 채용해 과거 체외순환사의 경우처럼 일정기간 교육 후 운영하고 있다. 체외순환사 PA간호사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직종이지만,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합법적인 전문직이다. 대부분 기피하는 분야의 의료 최전선에서 힘든 업무를 기꺼이 짊어지는 동료들에게 ‘유령의사’ 따위의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이러한 특수 전문직업군에 대한 이해나 법적인 규정이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것이다. 의사협회 병원협회 전공의협회 등 관련 단체가 PA간호사에 대한 각각의 득실을 따지고 해묵은 논란만 하는 동안, 촌각을 다투는 수술장에서 의료의 토대는 흔들리고 있다. 참 답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