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으로 촉발된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그 도화선은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이었다. 파산 규모만 700조 원. 현재까지 미국을 넘어 세계 최대 규모의 파산으로 기록된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리먼의 파산은 더 아찔한 추억이다. 파산 직전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주택저당증권에서 대규모 손실을 냈던 리먼을 싸게 인수하려던 산은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포기했고, 협상 중단 5일 만에 이 투자은행은 파산을 맞게 된다. 당시 산은 행장은 “장기적으로 보면 국내 금융이 글로벌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 기회였으나 포기해 아쉽다”고 회고하기도 했지만 ‘나라를 구한 신의 한 수’였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미국 스타트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산해 ‘제2 리먼 사태’로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2008년 문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어서다.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으로 은행으로의 유입 자금이 줄자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다가 손실이 커졌고, 이 사실이 알려져 뱅크런이 발생하자 금융당국이 서둘러 폐쇄를 결정한 것이다. 이틀 뒤 시그니처은행도 폐쇄되는 등 파장이 미국 내에서 확산하고, 전 세계는 금융위기 재현을 두려워하게 됐다.
미국 정부가 한도와 상관없이 예금 전액 인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긴급 진화에 나섰고, 부실대출이었던 2008년 위기 요인과는 다르며, 한국 금융당국도 “우리 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두고 볼 일이다. 지난 수년간 진행된 무제한적 양적완화에 최근 급격한 금리 인상이 덮치며 빚은 충격의 서막이라는 섬뜩한 경고도 나오는 판이다.
이 와중에, 산은이 리먼에 ‘발을 걸쳤던’ 그때처럼 국민연금이 SVB에 관여된 것으로 알려져 국민 불안을 키운다. 국민연금이 SVB 모기업(SVB파이낸셜) 주식을 직접투자분 기준 작년 9월 말 8만911주에서 연말 10만795주(당시 평가액 300억 원)로 늘렸는데, 현재 거래 정지로 원금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이 됐다. 그나마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파산했던 메릴린치의 지분을 가졌다가 이를 합병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주가 폭락으로 원금 회복까지 10년간 눈물을 흘렸던 한국투자공사가 SVB 파산 직전 SVB 모기업 주식을 상당 부분 매각한 점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선정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