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엄청난 빚쟁이 국가이다. 미국은 의회에서 법으로 국가의 채무한도를 정하는데 ‘법정채무한도(31조 3810억 달러)’가 이미 소진됐다. 그러니까 지금 미국은 3경 원이 넘는 부채를 지고 있다는 뜻이다. 올여름 민주당과 공화당이 이 채무한도를 높이는 결정을 할 텐데 티격태격하겠지만 결국 또 올릴 것이다. 그냥 ‘쇼’를 하는 거다. 미국의 빚은 지난 1980년대만 해도 3조 달러 정도였다. 이 빚이 10배 가까이 늘어난 건데 멋대로 달러를 찍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미국은 절대 이 빚을 갚을 수가 없고, 또 갚을 생각도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어떤 국가가 이런 상황이라면 그 나라 통화는 쓰레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작년 가을, 엄청난 ‘킹달러’에서 확인됐듯 달러는 건재하다. 달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2008년 말 세계금융위기 이야기도 많이 한다. 미국의 부동산과 파생상품 문제로 촉발된 경제 위기였는데도 결국 달러가 초강세로 갔으니까. 이런 믿음은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로 이어진다. 그 대단한 달러를 찍어내는 연준. “연준과 맞서지 말라”는 투자 격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현재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도 연준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고 있다. ‘과잉 긴축’을 통해 1980년대 폴 볼커처럼 시장을 초토화시켜 물가를 잡을 거라고 말한다.
1950년~60년대에 걸쳐 미국은 급성장했고, 달러의 위상도 높아져만 갔다. 그러던 중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는데,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베트콩을 제압하지 못했다. 급기야 1960년대 말 재정 파산 위기에 빠진다. 이렇게 되자 당시 미국 닉슨 대통령은 중대 결정을 내린다. 1971년 8월, 금태환제도를 종료해버린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찍을 때 금을 보유하지 않습니다. 달러를 가져와도 금을 내주지 않습니다. 우리 결정으로 달러를 발행할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반발이 거셌다. 그간 달러를 사용한 건 금 때문이었는데, 스스로 달러를 찍어낸다?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달러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데, 이때 달러는 ‘석유’를 끌어들였다.
1970년대 초반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국가들은 석유산업의 국유화를 완성하면서 강력한 오일 패권을 쥐게 된다. 하지만 이스라엘과의 중동전쟁에서 매번 패하면서 군사력에 대한 갈망이 생긴다. 미국은 이것을 노렸다. 1974년 6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은 파이잘 사우디 국왕과 ‘석유 달러결제 협정’을 체결했다. 사우디는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군수 물자를 수입할 수 있고 미국도 엄청난 대가를 얻어낸다. 바로 ‘세상의 모든 석유는 달러로만 거래한다’는 조항이다.
달러는 석유를 등에 업으면서 더 강력해졌다. 석유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데, 그 석유를 사려면 무조건 달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달러는 석유와 이별해야 한다. 세상은 석유를 버리고 태양광 풍력 원자력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석유와 이별하는 달러, 정말 괜찮을까.
양적완화는 그야말로 ‘봉이 김선달’ 같은 거다. 정부에서 채권을 발행하면 그 채권을 중앙은행에서 인수해주고 그만큼의 돈을 찍어낸다. 맘 편하게 시중 유동성을 늘리는 방식이다. 왜 이게 봉이 김선달이냐하면 채권자인 중앙은행은 절대로 정부에 대해 빚 갚으라고 압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채무자인 정부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미국 연준은 이 양적완화를 통해 2009년 이후 엄청난 양의 미국 채권을 보유하게 됐다. 10년 만기 미 국채의 경우 20% 이상을 연준이 갖고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이 지난 1980년대처럼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릴 수 있을까? 아니면 10%? 혹은 6~7%까지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까. 이렇게 되면 31조 달러 빚더미에 앉은 미국 재무부는 이자 내다가 볼 장 다 볼 것이고, 연준 스스로도 막대한 평가손실을 보게 된다.
필자는 차라리 연준이 지금의 말폭탄처럼 ‘과잉긴축’을 했으면 좋겠다. 그건 아직도 미국 패권과 달러가 건재하다는 뜻이니까. 만약 강력한 과잉긴축으로 나서지 못하면 그때 어떻게 될까. 어쩌면 지금은 ‘폭락’이 아니라 ‘버블’을 걱정해야 할 때인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