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를 다녀왔다. 여느 관광객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여행지의 음식점 정보를 꼼꼼히 챙긴다. 여느 관광객과 다른 점이라면 ‘맛집’으로 소문난 곳보다는, 지역성과 스토리가 풍부한 음식점 위주로 챙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런 나의 레이다에 매우 흥미로운 음식점 한 곳이 포착됐다. 가나자와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걸리는 도심에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건물을 짓고 죽과 커피를 파는 곳이었다. 가나자와 시민은 물론이고 관광객도 꽤 많이 찾는 곳이며 방문자들의 평가도 매우 긍정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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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자와 ‘혼마치스토랏토(本町ストラット)’의 죽 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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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자와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3만5000원 상당의 아침 식사를 포기하고 6800원 정도의 모닝세트를 먹기 위해 죽집을 찾았다. 도심 주택가에 숨은 듯 자리한 죽집은 생각보다 크고 아늑했다. 무엇보다 실내를 채운 다양한 식물 덕분에 쾌적했다. 오로지 유기농 쌀과 채소로 음식을 만든다든가, 죽의 명칭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죽’ ‘피부노화를 방지하는 죽’ ‘숙취를 해소해 주는 죽’ 등으로 붙인 것으로 보아 당연히 재기발랄한 청년 혹은 센스 있는 여성이 운영하는 음식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년의 아저씨 두 분이 운영하고 있었다. 한 분은 죽을 담당하며 접객까지, 한 분은 드립 커피를 내리며 혼자 온 손님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듯 호흡이 척척 맞았다.
죽은 현미와 7분도로 도정한 쌀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흰죽’이었다. 유기농 쌀 자체의 맛과 향이 좋아 흰죽 만으로도 충분히 한 그릇을 비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함께 나온 세 가지 고명이 인상적이다. 피스타치오와 호두를 곱게 간 가루와 새싹 채소. 세 가지 고명 덕분에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흰죽을 다양한 맛으로 즐길 수 있었다. 손님이 죽을 비우는 속도를 봐가며 솜씨 있게 내린 드립 커피의 맛 또한 웬만한 커피 전문점에 못지않았다. 쾌적한 분위기에서 내 몸에 죄책감이 전혀 들지 않는 훌륭한 식사였다.
무엇보다 중년 아저씨 두 사람의 발상과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을 찾는 지역 주민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타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이 죽집에 대한 평가 어디에도 ‘중년 남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는 곧 누가 운영하느냐에 상관없이 다양한 세대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방증이며, 좋은 음식은 나이와 성별 심지어 국적도 얼마든지 넘나들 수 있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미디어가 특정 연령대를 대상화해 세대를 구분하고, 기업은 이를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해 확대 재생산하고, 정치와 행정은 마치 유행처럼 특정 세대를 겨냥한 공약과 정책을 남발하는 행태에 나는 지독할 정도로 반감을 갖고 있다. 어느 한 세대도 쓸모없는 세대는 없으며, 어느 한 세대도 정치와 정책으로부터 소외되어도 좋은 세대는 없다.
그래서 나는 직장을 퇴직하거나,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내 또래 중년들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가나자와의 비닐하우스 죽집 아저씨 두 분에게서 중년의 도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과 단서를 얻었다. 다음에 다시 가나자와를 방문할 때도 죽집이 건재하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아재들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