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김용석의 시사탐방] “거울아, 거울아!” 그 중독의 마법

김용석 철학자

  • 김용석 철학자
  •  |   입력 : 2023-02-09 19:53:09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백설공주의 계모로 들어온 새 왕비는 신기한 거울을 갖고 있었는데, 거울을 보며 반복적으로 묻곤 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지?” 그때마다 거울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왕비님입니다. 왕비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거울의 이런 대답은 백설공주가 자라서 아름다운 소녀가 되기 전까지였다. “거울아, 거울아!”라는 왕비의 주문에 거울은 이렇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왕비님도 물론 아름답지만, 백설공주님이 왕비님보다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왕비는 나무꾼을 시켜 공주를 암살하도록 하고는 틈만 나면 또 거울에 물었다. “거울아, 거울아….”

그 후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다 알고 있다. 아니 백설공주 이야기만큼 잘 알려진 고전 동화도 흔치 않으리라. 누구든 이 동화에서 왕비의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시기심, 사악한 음모, 그리고 권선징악의 결말을 상기한다.

그러나 이 동화는 인간의 특성에 관한 암호를 담고 있다. 다른 동물들과도 현격히 차이가 나는 그 특성은 이야기의 근저에 깔려 있다. 그것은 중독성이다. 거울은 항상 답을 준다. 그때마다 왕비는 거울에게 점점 더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거울의 대답이 만족스럽든 불만이든 계속 묻게 된다. 요상한 리듬을 지닌 ‘거울아, 거울아’라는 주문은 왕비의 온 감각을 거울에 집중시키게 하고 중독성을 증폭시킨다. 왕비는 그 주문으로 마법의 세계를 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도 ‘중독의 마법’을 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마법사도 마법의 부작용은 어쩌지 못하는 법….

거울과 왕비의 이야기는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주되고 확장되었는데, 여기에도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럴 때마다 거울이 답을 주는 영역 또한 확장되어왔다. 미적 판단에서, 다양한 지식과 정보로, 나아가 미래 예측까지 마법의 거울은 능력을 발휘해간다. 그때마다 왕비는 끊임없이 묻고 거울은 바로 답한다. 지금도 미지의 먼 나라 마법의 성에서 왕비와 거울은 묻고 답하고 있을지 모른다.

유토피아 사상으로 유명한 에른스트 블로흐는 “동화들은 여러 가지 과학·기술에 대한 가상적인 기기들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화 작가들이 이러한 기기들을 단순히 마술 도구로서만 이야기에 도입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알라딘의 램프처럼 인간의 욕망이 놀라울 정도로 성취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묻는다. “그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오랫동안 이어온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않는가?” 과학·기술의 유토피아를 다룬 과학소설(SF)에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발명품들의 목록이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동화에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사회적, 정치적 유토피아뿐만 아니라 ‘기술적 유토피아는 바로 동화 속에 이미 묘사되어 있었던’ 것이다. 과학·기술적 유토피아는 또한 디스토피아를 내포한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이 아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의지가 그 구체적 실현 과정에서 항상 동반하는 자기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의 동화에서 미래 첨단 기기의 알레고리로 등장했던 ‘왕비의 거울’이 2023년 2월 1일 유료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다. 새롭게 이름하여 ‘챗GPT’(Chat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라고 한다. 챗GPT(이하 챗티)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주요 투자자인 인공지능 기업 오픈에이아이(OpenAI)에서 개발한 대화형 언어 모델로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전 학습을 통해 주어진 질문에 문장으로 생성된 답을 제시하는 인공지능을 뜻한다. 챗티의 원래 명칭에 있는 두 단어, ‘제네러티브’와 ‘트랜스포머’를 상기하기 바란다. 이 매혹적인 단어들은 챗티의 열쇠 개념이자 미래 발전 전망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챗티가 뉴스가 되면서 한때 메타버스 기사가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지난 며칠 동안 이 세상의 중요 이슈들, 곧 전쟁, 기후변화, 식량 위기, 인플레이션 문제 등을 깜짝 집어삼키는 ‘디지털 신상품 출고’의 전형적 특징을 보였다. 그러고는 이미 수많은 말, 말, 말들이 각종 미디어에 난무했다. 여기서 내가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챗티의 등장은 올 것이 온 것일 뿐이다. 이렇게 편한 디지털 ‘답변 자판기’의 활용은 우리 일상에 빠르게 퍼질 것이다.

다만 우리가 동화 속 왕비의 신세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다. 챗티는 우리가 개발한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우리는 사용자다. ‘만능 에이아이’를 지향하며 이를 운영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플랫폼에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곧 사람들이 ‘만성 유저’가 되도록 일종의 ‘중독 비즈니스 모델’을 활용한다. 그것이 우리 일상에서 제거하려는 건 ‘노력’이다. ‘애써서 할 것 없어, 내가 해줄게, 그냥 즐겨!’ 이런 속삭임이 들릴수록, 각자 삶의 균형을 찾아 노력하는 ‘성찰적 사용자’가 될 필요가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부산 매출 1위 ‘본사 이전’ HMM…전국 매출 1000대 기업 부산 31곳
  3. 3‘국민아버지’ 배우 최불암 떠나보내며
  4. 4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5. 5‘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6. 6[뭐라노]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뒷북 안전펜스
  7. 7[사설] 가덕도신공항 착공 늦춘 정부, 공사비 증액 확약하라
  8. 8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9. 9“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10. 10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1. 1“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2. 2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3. 3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4. 4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5. 5민주, 5일 조희대 국조요구서 보고…국힘 “탄핵 역풍 맞을까 질질 끌어”
  6. 6이해충돌 빗장 풀려는 시의회…“사익추구” vs “전문성 강화”
  7. 7북한 해커들, 바이낸스서 탈취한 자금 '2차 세탁' 중
  8. 8보수 차기 경쟁 본격…張 “민생 예산 증액”·吳 “모두 힘합쳐야”·韓 “상향식 공천”
  9. 9국힘 새 당무감사위원장 양준모 교수
  10. 10[속보] 北김여정, 바이낸스 사태에 "美 정치적 도발…예의주시"
  1. 1부산 매출 1위 ‘본사 이전’ HMM…전국 매출 1000대 기업 부산 31곳
  2. 2‘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3. 3주식 팔면 다음날 돈 받는다…증권시장 결제주기 하루 단축
  4. 4[뭐라노] ‘김해공항 최장노선’…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5. 5정부, 2023년 중단했던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 재추진 본격화
  6. 6호반, 한진칼 최대주주 기업결합 신고
  7. 7K-팝 열풍 타고 부산관광 키운다…한류산업 진흥 조례 추진
  8. 8“올해 북극항로 이용 150척…역대 최다 전망”
  9. 9“9증9포 독보적 특허 ‘명품 홍삼’…글로벌 1위 도전”
  10. 10[한 손 뉴스] 부산·통영 ‘환경교육도시’로…특화 환경교육 행·재정 지원(종합)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3. 3‘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4. 4[뭐라노]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뒷북 안전펜스
  5. 5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6. 6모집 공고만 15차례…부산 보건소도 ‘의느님’ 모시기 진땀
  7. 7노사 마찰에 현대차 울산공장 제네시스 생산라인 이틀째 중단
  8. 8[속보]李 정부 초대 공소청 수장 후보자 3인 압축 전망
  9. 9국제사우회 “지광 손 뗄 때까지 함께 싸울 것”
  10. 10김해,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 유치
  1. 1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2. 2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3. 3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4. 4[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5. 5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6. 6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7. 7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8. 8“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9. 9“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10. 10부산과기대, 제107회 전국체전 야구 우승…‘3년 연속 메달’ 쾌거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코뿔소 없음과 진공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국제칼럼 [전체보기]
국조 대상은 조희대가 아니라 증시 참사다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바이낸스 턴 북한 해커
호감과 비호감 사이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가덕도신공항 착공 늦춘 정부, 공사비 증액 확약하라
내년 확장예산, 지방 성장동력 확보 마중물 돼야 한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