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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월드컵과 세계시민

이란·中 국민의 저항운동, 지구촌 곳곳서 연대 물결

평화·인권 등 보편적 가치, 내로남불하면 결국 고립…협량한 민족주의도 뇌관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1-30 20:03:37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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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이 한창이다. 월드컵 역사상 2002년 개최된 한일 월드컵 이래 20년 만에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과 남미의 축구 강국에 승리를 거두는 등 많은 이변이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이번 월드컵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따로 있었다.

첫 번째는 이란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도열한 자리에서 자국의 국가를 부르지 않는 장면이었다. 이란 선수들의 이런 행동은 이란에서 계속되어 온 반정부 시위에 연대를 표명한 것이었다. 이란에서 한 젊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의문사를 당했음에도 이란 정부가 그 사실을 은폐했다. 이로 인해 지난 9월부터 이란 정부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계속됐는데 이란의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이 공개적으로 연대의 감정을 표한 것이다.

사실 이란에서 계속되는 시위는 단순히 복식의 자유를 요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의문사한 여성이 이란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었기 때문에 이란에서의 시위는 소수민족의 저항 운동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속에서 절망해온 이란 청년들의 좌절감이 이란에서의 이러한 저항 운동의 근본적인 배경이 된 것이다.

두 번째 눈에 띈 장면은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보이는 각종 중국 기업의 광고판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 중국 기업들이 한 후원 총액이 13억9500만 달러(약 1조8711억 원)에 이른다. 중국 기업이 이번 월드컵 결승전의 경기장을 지었다고도 하고, 중국의 전기차가 각 국가대표팀의 셔틀버스로 활용되고 있으며 경기와 관련된 각종 잡화의 70%가 중국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월드컵이 정작 중국 국내에서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중국 당국의 강력한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던 중국 국민이 밖으로 뛰쳐나와 당국의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이번 월드컵이 큰 영향을 미쳤다. 봉쇄된 집안에서, 혹은 격리된 공간에서 월드컵을 보고 있던 중국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스크도 하지 않은 여러 국가의 축구 팬들이 카타르의 월드컵 경기장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넘쳐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봉쇄된 중국의 세계와의 격리를 실감했던 것이다.

신장위구르 우루무치의 봉쇄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으로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해 많은 사상자가 나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더욱 커졌다. 그동안 코로나 봉쇄에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들이 연행되거나 치욕스럽게 무릎이 꿇리는 등 방역 당국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SNS를 통해 잇따라 표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제 중국 정부의 통제에 저항하면서 코로나 봉쇄 해제와 자유를 요구하는 이른바 백지(白紙) 시위가 중국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이번 중국의 코로나 봉쇄 해제 요구 시위는 반정부 운동으로도 흘러갈 기세다. 시위의 확산을 우려한 중국 당국은 대학교의 조기 방학을 발표했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이란과 중국의 생생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란과 중국 국민의 저항 운동에 동참하려는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이미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함께 같은 경험을 하고 세계적 이슈에 대해 긴밀히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월드컵은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global citizen)’임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인종 성별 국적 종교 계급의 차이에 상관없이 지구촌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평화 인권 다양성 민주주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보편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시민’이라는 정체성 말이다.

세계시민의 이러한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는 국가는 결국 고립될 것이다. 이는 겉으론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지만 결국 강대국인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다른 국가 사람들의 삶은 어찌 되든 모르쇠로 일관하는 내로남불 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약소국의 설움을 떨치고 번듯하게 세계 강국이 되겠다고 국가이익과 협량한 민족주의를 강조해온 우리 한국의 모습도 예외가 아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강한 대한민국을 인정받고 과시하는 또 다른 장이 되기보다는 세계시민이 스포츠를 통해 우의를 나누고 나아가 지구촌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세계시민이 결집하는 첫 번째 월드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홍규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중국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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