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조용필 ‘오빠 부대’를 보며 자랐다. 학생 때는 서태지와 H.O.T 같은 원조 아이돌에 열광하는 또래들을 봤다. 이후로는 가끔 뉴스에서 팬클럽 회원들이 아이돌에게 값비싼 선물을 한다는 소위 ‘조공 문화’나 스토커 행태의 ‘사생팬’ 기사를 본 기억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에 이런 팬덤에 흥분하는 사람이 없었던 때문이었는지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다.
다시 팬덤 문화를 주목하게 된 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정치였다.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를 내고, 법정에 나온 법무장관의 차를 물 티슈로 닦아주는 모습을 보며 기괴한 기분마저 들었다.
팬덤 문화가 정치 영역에 스며든 것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출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팬덤 스스로가 불량 정치인을 솎아낼 수 있는 자정기능을 전제로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정치 팬덤은 상대 진영에 대한 적의로 가득차 있다. 또 이를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키우려고 하는 정치인이 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과거 팬덤 정치가 정치인을 향한 팬들의 한 방향 작용이었다면, 최근 행태는 정치인과 팬덤이 상호작용하며 악순환의 고리를 키우고 있다.
1인 미디어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에서 BJ(Broadcasting Jockey)는 방송을 하는 댓가로 후원의 일종인 ‘별 풍선’을 받는다. 별 풍선이 수입이다 보니, BJ들은 때때로 거액의 별 풍선을 받기 위해 시청자가 원하는 온갖 미션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션의 강도가 높을수록, 사회 통념상 허용되기 어려울수록 화제성이 높고 반대급부도 크다.
최근 팬덤에 기댄 정치인의 모습은 흡사 별 풍선을 받기 위해 미션을 수행하는 BJ처럼 보인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나 적의에 가득 찬 저주에 가까운 발언, 트집잡기는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 퇴진 같은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팬덤으로부터 총선 밑천인 ‘정치 별 풍선’을 받기 위한 행태로 비춰진다. 발언의 수위가 높고, 자극적일수록 별 풍선을 많이 받을 것이다. 더 많은 별 풍선을 받기 위해 음해와 의혹 제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개의치 않는다.
정치인은 자극적인 말을 내뱉고, 이는 열광하는 팬덤 사이에서 다시 확대 재생산된다. 자극의 임계치는 항상 높아지는 법이다. 더 악의적이고 저열한 공세의 요구로 이어지고 정치인은 기꺼이 수용한다. ‘별 풍선 정치’의 악순환은 이렇게 판돈을 키운다.
어떻게든 이름을 알려야 하는 원외 인사들과 언론이라고 주장하는 유튜버들이야 그렇다 치자. 그들 스스로 시도 때도 없이 ‘존엄한 헌법기관’이라고 외치는 일부 현역 의원의 눈물겨운 별 풍선 받기 노력은 헌법기관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정치적 영리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면책특권 뒤에서 ‘아니면 말고’ 식이나 ‘내가 의혹을 제기했으니 당신이 혐의 없음을 증명하라’ 식의 억지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입혀준 면책특권이라는 갑옷은 이제 ‘팬덤을 위한 무대 의상’으로 전락했다는 조소마저 나온다.
팬덤의 별 풍선에 종속될수록 정치는 건강한 논쟁이 아닌 실익 없는 정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다. 비단 정치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팬덤을 의식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부 국무위원의 거친 말도 우려를 더한다. 한 스타급 국무위원과 ‘별 풍선 의원들’의 말 싸움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한다. 명예훼손과 모욕죄 같은 고소고발도 양념처럼 곁들인다. 국민은 진절머리가 나고 피로감을 느낀다.
정치 평론가나 여권 일각에서는 ‘따박따박’ 말 대답을 하는 국무위원에게 ‘개떡같이 질문해도 찰떡처럼 알아듣고’ 적절하게 대응하라고 주문한다. 소모적인 정쟁을 피하고 국정의 본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찰떡같은’ 질문이나 의혹 제기를 한다면 품격 있는 정쟁이 될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윤정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