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낙엽이 흩날리며 가을을 재촉한다. 이정표도 없이 부는 가을바람은 무상(無常)을 느끼게 한다. 자작시 갈대와 가을의 노래를 읊어본다.
‘가을바람이 갈대를 스친다/갈대는 함께 흔들리며/각자의 고독을 노래한다//철새가 날아와 그 고독을 달래준다/하지만, 잃어만 가는듯한 비애는/더욱 가슴을 통렬히 찢는다//갈대는/함께 가을을 노래하지만/저저마다에겐 고독이 더 깊어진다/스산한 바람이 가을을 재촉한다//사라져 가는 가을의 노래여//’
무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마음과 육체를 가진 생명적 존재가 항상 변화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상을 지배하는 기본적인 진리인데,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무상한 것을 상으로 보는 것에 고통이 생긴다. 무상으로 여실히 봄으로써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의 일시적 존재이므로 고뇌에서 해탈할 것을 불교는 지향한다.
소승불교의 또 하나의 이론은 고(苦)인데 사고팔고(四苦八苦)를 설한다. 모든 사람의 축복 속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한 여덟 가지 고통이 시작된다.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통은 태어나는 괴로움, 늙어가는 괴로움, 의학적으로 인간이 겪는 병이 약 삼만 육천 가지라고 하는데 병으로 인한 괴로움, 누구나 반드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괴로움이다.
그리고 정신세계의 네 가지의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와 원수와 만나야만 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구하지 못하는 괴로움인 구불득고(求不得苦), 정신적·육체적으로 욕망이 매우 많은 데서 오는 괴로움인 오온(五蘊)에서부터 생기는 오음성고(五陰盛苦)이다. 이태원 참사는 애별리고의 비통함이 느껴진다.
무상 고 무아를 소승불교에서 최고의 진리라고 주장하였다. 요약하면 무상하고 무아이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고다. 가장 궁극적인 문제인 ‘무아’에서 ‘나’가 없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의존적으로 연관되어 존재하는 것뿐이며 현실적으로 생멸변화(生滅變化)하는 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고정불변 하는 실체나 본체 혹은 실체적인 아(我)가 없다는 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정반대로 상락아정을 설하고 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며 상전벽해처럼 180도 바뀌는 것이다. 상락아정은 열반에 갖춰진 네 가지 덕을 말하며 이를 열반사덕(涅槃四德)이라고도 한다. 열반은 절대 영원하며(常), 안락에 가득 차고(樂), 참 나이며(我), 청정하다(淨)는 것이다. 여기서 열반은 육체적 사멸에 의한 고요함이 아니라 번뇌망상을 완전히 없애버린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다시 설명하면 ‘상(常)’이란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는 영원한 생명관에 근본을 둔 삶의 자세이며 세상의 변화에 무감각한 ‘무상’과 달리 모든 변화를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막힘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는 모습이다.
‘락(樂)’이란 모든 번뇌와 고통을 높은 경애로 극복하고 확신에 찬 일념으로 사물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힘을 갖춘 생명을 말한다. 비유컨대 천인(天人)이 충만하고 보배 나무에는 꽃이 많이 피어 향기롭고 열매가 많이 열려 있으며 하늘의 음악이 아름답게 연주되고 만다라의 꽃이 비처럼 내리는 안락하고 행복한 경애를 의미한다.
‘아(我)’란 이기주의와 교만심에 가득 찬 편협한 생명을 자신에 내재한 불계(佛界)를 용현함으로써 무엇에도 분동하지 않는 확고한 자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淨)’이란 여러 가지 번뇌의 더러움과 생명의 탁함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모든 더러움을 씻어 전환하는 강력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경문에 ‘여연화재수(如蓮花在水)’라고 있는데 뿌리는 흙탕물 속에 있어도 수면 위로 청정한 꽃을 피우는 연꽃과 같은 강인하고 향기로운 인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락아정이라는 것은 불계의 이명이기도 하고 인간이 가장 위대해질 수 있는 존극의 경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현대적 의미로 표현하면 인간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하고 환희 가득한 최상의 깨달음의 경애로 정의하고 싶다. 니코스의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와 일맥상통한다.
이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에 불멸의 꽃을 피우고 지옥의 번뇌에서도 화안한 보리의 미소를 짓고 어떤 절망의 나락에서도 희망을 노래하는 경애로 절차탁마하여 내면에 금강불괴의 금자탑을 세우는 것이다. 요약하면 상락아정이란 대승의 최고봉인 묘법연화(妙法蓮華)를 독송하고 일념이라도 수희(隨喜)하면 생명의 오저에서 형언할 수 없는 환희와 생명력 그리고 용기와 지혜가 용솟음치며 복덕으로 가득 넘치는 영원한 대생명의 장밋빛 세계가 열리는 것을 말한다.
박상호 시인·고향의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