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다 보니 예전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말들이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표현도 그 가운데 하나다. 먹을 게 제대로 없었던 때에야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야 힘든 일을 할 수 있었음은 당연지사. 그러나 쌀밥을 대신하는 음식이 차고 넘쳐 쌀 소비가 줄어드는 현실을 고려하면 요즘에는 ‘밥심’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민 한 사람은 연 56.9㎏의 쌀을 먹었다. 30년 전인 1991년(116.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1인당 하루 평균 쌀 소비량은 155.8g이다. 밥 한 공기를 짓는데 대략 쌀 100g이 필요하다니 하루 밥 한 공기 반 정도 분량이다. 이에 정부는 식생활의 서구화가 지속되면 수년 후에는 한국인의 식탁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미미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의 고민은 또 있다. 식량 안보라는 특성상 논은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고 쌀 생산량도 적정 수준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정책이 ‘가루쌀’ 재배지 확대다. 가루쌀은 일반 쌀과 달리 물에 불리지 않고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품종이다. 빵 면 과자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정부는 업체의 수요가 늘어나면 논의 지속적인 활용이 가능해 농가 수익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밀가루 수입을 크게 줄이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와 관련,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경남 산청 의령 등 전국 39곳을 가루쌀 생산단지로 선정했으며 매년 면적을 늘려나가기로 했다. 농식품부는 소비 감소로 인한 쌀 과잉 생산에 대처하려면 가루쌀 재배가 최선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가루쌀의 효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데다 구체적인 수요 계획조차 없다며 정부가 일방적인 행정을 펼친다고 비난한다. 야당은 자신들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쌀 과잉생산 때 정부 매입 의무화 등이 주요 내용) 처리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내놓는다.
어느 정책이나 마찬가지겠으나 쌀 관련 사안에 대한 결정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쌀은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식생활과 관련이 있는 만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좌우되는 시장논리를 무작정 적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가루쌀 재배가 쌀 과잉생산을 해소할 방법이 확실하다면 정부는 주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최상책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루쌀 논쟁이 길어지면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염창현 세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