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울산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같은 대규모 공장이 들어선 공업도시인가요, 아니면 국보 제285호인 반구대 암각화, 대한민국 2호 국가 정원인 태화강 국가 정원으로 대표되는 관광도시인가요? 두 이미지의 경계선에서 주저하고 계신 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울산은 지금 공업도시와 관광도시의 경계를 아우르며 디지털 기술과 21세기 미디어아트의 접목을 시도, 신문화도시로 대도약 중입니다. 그 최선봉에 울산시립미술관이 있습니다.
물론 문화도시 울산의 발판에는 울산박물관 울산시립도서관이 우선합니다. 울산에서는 공단 야경 빼고는 볼 게 없다던 말도 이제 옛말이지요. 박물관과 시립도서관에 이어 울산시와 시민이 오래 염원하던 울산시립미술관이 10여 년의 준비를 마치고 올해 1월에 드디어 개관했습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습니다. 예정됐던 울산초등학교 부지에서 옛 울산 객사의 흔적과 유물이 발굴돼 보존하기로 결정되며 새 부지를 찾아야 했고 현 미술관 자리인 북정공원으로 최종 확정됐습니다. 전화위복으로 울산 동헌과 내아가 바로 이웃해 열린 공간으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디지털 미디어아트를 중심으로 하는 21세기 미래형 미술관을 지향합니다. 공업도시 울산이 가진 역동성과 생명성을 미디어아트가 이어받아 글로컬 도시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디어아트 거장인 백남준 작가의 작품 세 점(거북, 시스틴 채플, 케이지의 숲-숲의 계시)을 첫 소장품으로 수집했다는 점에서 강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특히 ‘거북’에는 울산 대표 유적인 반구대(엎드린 거북 형상) 암각화의 특징이 함께 담겨 그 상징성이 큽니다. 166대의 TV 모니터를 거북 형상으로 설치한 이 작품은 현재 ‘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 기획전: 땅의 아바타, 거북’이란 제목으로 전시 중이며 오는 23일까지 관람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전시는 정연두 작가의 ‘오감도(烏瞰圖)’입니다. 미디어아트 전용관 XR랩에서 전시 중인 ‘오감도’에는 까마귀의 시선으로 바라본 울산의 모습이 다큐멘터리로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영감을 받아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현대 도시인의 삶을, 이동하는 까마귀 떼에 비유했다고 말했습니다. 태화강변 십리대밭에서 매년 겨울 펼쳐지는 까마귀 떼의 군무를 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약 14분의 러닝타임에 보헤미안 가수 안코드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상은 세 벽면과 바닥을 통해 환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전시 일정이 내달 10일까지로 재연장된 것으로 보아 시민과 관광객에게 큰 호응과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제1전시실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출신의 11명의 작가가 참여한 ‘예술 평화: 0시의 현재’, 제3전시실에서는 어린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박주애 작가, 최락준 건축가의 협업 작품 ‘1명의 어린이와 1000명의 어른들’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비 오는 주말 오후, 미술관을 다시 찾았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꽤 많은 관람객이 전시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전시실 바닥에 둥글게 둘러앉아 도슨트의 설명을 경청하는 학생들, 어린 자녀와 함께한 가족, 연인들 그리고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하는 홀로 관람객들까지 미술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다양했습니다. XR랩에는 관람석이 따로 없습니다.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앉아 전시를 봅니다. ‘오감도’ 영상이 흐르고 안코드의 노래가 시작됐습니다. 앞에 선 예닐곱 살 된 남자아이의 어깨가 음악에 맞춰 조금씩 들썩였고 춤사위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흥을 못 이겨 마침내 벽면을 타고 움직이는 영상을 쫓으며 폴짝거렸습니다. 영상 위로 아이의 그림자가 수시로 비쳤지만 뭐라 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생동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예술을 향유하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 기쁨 때문일까요.
반구대 암각화와 백남준의 거북, 정연두의 오감도와 까마귀 춤을 추는 아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예술이 펼쳐지는 여기는 울산시립미술관입니다. 미술 하는 울산으로 어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