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이 넘은 오래전 일이다. 유럽으로 출장 다닐 때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느끼던 차에 벨기에에서 처음 받았던 충격은 아직도 가슴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과일가게 아줌마도, 택시 운전사도, 길을 찾을 때 만난 어린아이나 나이 드신 분도 누구나 자유자재로 영어를 하는 게 아닌가! 기본적으로 지하철 티켓 발권기가 4개 언어로 돼 있고 도시 곳곳의 안내물도 4개 언어로 이뤄져 이방인의 소통이 자유로웠다. 덕분에 체류 기간 숨통이 트여 그 나라를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출발해 3시간이면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등 인접한 나라를 갈 수 있다. 국경을 맞댄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다 보니 벨기에는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독일어를 모두 구사한다. 국제 공용어인 영어가 보태져 벨기에 국민은 기본적으로 4개 언어를 하게 된다. 벨기에 지인에게 남의 나라 언어를, 그것도 4개 언어를 배우는 게 어렵지 않느냐? 그리고 자존심 상하지 않느냐?고 슬쩍 물어보았다. 지인은 벨기에는 무역국가인만큼 국제사회에서 무역하는 데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본인들이 해외여행 다닐 때 자유롭고 편해 큰 장점으로 생각한다고 유쾌하게 답했다. 여기에 벨기에가 좁은 국토와 빈약한 부존자원 등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무역과 기술 개발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서유럽의 부국이 된 원동력도 언어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벨기에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산업혁명을 일으켜 급격히 발전한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기를 겪은 후 주변 유럽 국가들보다 빠르게 위기를 극복한 것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지만 강한 나라로, 유럽연합의 심장 또는 수도로 불리는 배경은 지리적인 위치를 장점으로 활용해 인접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글로벌 사회와 언어적 어려움 없이 소통하며 발전해온 덕분이 아닌가 한다.
가까운 싱가포르는 어떠한가. 말레이어 중국어 타밀어 영어 4개 언어를 구사하며 동남아 무역 허브로서의 지리적 이점과 중화 문화권에 영어가 통하는 지역이라는 장점을 활용해 동아시아 금융 허브와 글로벌 해양물류도시로 발전해 오고 있다.
얼마전 글로벌 3대 이벤트이자 중동지역 최초의 엑스포를 치른 두바이 또한 중동지역에서 영어가 가장 많이 통용되는 곳이다. 주민의 80% 이상이 이민으로 구성돼 힌두어 중국어 등 12개 이상의 언어 사용이 이뤄지지만 공식 공용어는 아랍어이고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다. 아라비아만의 작은 항구도시였던 두바이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세계적인 무역 허브로 성장해 중동과 페르시아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 외에도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로도 꽃을 피우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3개 도시의 공통점은 영어 사용이 자유롭고 무역 및 물류 허브, 비즈니스와 관광 허브로 성장 발전한 곳이다. 지리적 위치의 장점을 잘 살리고 언어 소통의 편이성을 앞세워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글로벌 도시로 발전을 견인하는 데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 사용이 도시 발전과 직결돼 있고, 그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최근 부산시가 교육청과 손잡고 글로벌 영어상용도시 조성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드디어 우리 도시도 기본기를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국제회의 기획업인 컨벤션을 22년간 하면서 다양한 해외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국제행사를 하면서 가지는 안타까움은 해외 참가자들이 호텔 밖을 나가는 순간 힘겨워 한다는 것이다. 굴뚝 없는 황금알을 낳는 부가가치 산업으로 부산은 아시아 5위, 세계 10위권의 선두권에 있지만 고부가가치 창출과 국제도시로서의 환경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 식당이든 가게든 어떤 곳에서도 영어로 소통이 쉽지 않다. 해외 참가자들이 지갑을 열고 싶어도 돈을 쓸 수 없는 곳이 부산이다.
부산은 지정학적인 장점으로 세계 2위의 환적항이자 물류거점 도시로 성장했다. 또한 풍부한 잠재력으로 국제관광도시로 선정됐다. 무엇보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를 유치하면 지구촌 200개국에서 오는 5050만 명의 방문객들을 맞이해야 한다. 글로벌 영어상용도시 조성이 예정대로 잘 진행돼 부산이 진정한 국제도시로서 면모를 갖추어 갈 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자라는 우리 ‘미래’들이 영어로 소통하며 코스모폴리탄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외국어를 모르는 자는 모국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괴테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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