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팍스(1920~1982)는 영국외과학회 회장을 역임한 대장항문외과 의사였다. 명문 서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에 입학한 그는 학부 도중 록펠러 장학생으로 존스홉킨스에서 공부했고 영국으로 돌아가 26세에 의학사, 박사 과정까지 한꺼번에 마칠 정도의 수재였다. 그가 대장항문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너무나 심오하고 창의적이어서 세계 대장항문 학계에 역사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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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서상균 기자 |
앨런이 고안한 치핵 수술법은 창의성 안정성 효율성을 인정받아 표준화 과정을 거쳤고, 그의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의사가 시행하는 수술의 한 방법으로 전해진다. 1976년 그가 제안한 치루의 분류법도 세계 표준 분류법이 됐다. 직장암 수술 후 제거된 직장의 기능을 보완할 수술법, 궤양성대장염으로 전체 대장을 절제한 뒤 후유증을 줄이기 위한 회장낭 수술법 등 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할 때마다 대장항문 분야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외과의사로서 전성기였던 1966년, 치질도 없는 환자에서 변비나 기분 나쁜 무직함, 우리하게 아픈 엉덩이 통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알게 됐고 ‘회음하강증후군’이라는 실체가 있음을 보고했다. 회음하강은 외과의사 사이에서 핫이슈가 됐다. 1975년 그는 회음하강으로 발생한 변실금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3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수술법인 항문 후방 복원술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그의 의도대로 수술환자의 90%에서 증상의 호전을 보였다.
출산에 의한 여성의 회음 및 괄약근 손상은 30% 이상에서 발생한다. 젊었을 때 발생한 괄약근 손상은 증상이 없다가 노인이 되면서 나타난다. 나이가 들면 퇴행성 변화로 골반 바닥을 지지하는 조직이 약해지고 회음은 아래로 처진다. 이후 자궁·질 탈출, 직장 탈출이 진행되고, 변비 변실금 직장통의 대표적 증상을 나타내는데 이를 회음하강증후군이라 한다. 퇴행성 변화가 진행되면 골반을 지탱하거나 유연성을 유지하는 힘이 약해지는데, 이는 강한 지지와 유연성을 좌우하는 콜라겐의 변성과 약화에 기인한다. 방광과 질·자궁, 항문 직장을 지지하는 인대와 근육과 같은 조직이 약화돼 나타나는 증상이 잔뇨·잔변감, 뒤 무직함, 항문 가려움, 작열감 등이고 이것이 진행되면 출구폐쇄 변비 직장통 요실금 등의 증상과 함께 마지막에는 변을 참을 수 없게 된다.
회음하강은 눈으로 확인되기도 하지만 정확히 진단하려면 항문직장기능검사와 영상진단 장비·기술이 필요하다. 배변영화조영술과 골반 MRI는 필수다. 조기 진단이 되면 식단 조절, 배변습관의 변화, 골반근육 강화 운동 등으로 진행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변실금으로 진행하거나 방광 자궁·질 직장 등 골반장기가 완전히 탈출되면 수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회음 복원술, 복강경 천골·질·회음고정술, 질 후방 메시 고정술 등의 방법이 소개된다. 회음이나 괄약근의 결손이 동반된 경우는 단계별로 수술하기도 한다. 그중에서 복강경 수술이 으뜸이다. 복강경 수술로 회음 하강과 골반장기(방광 자궁·질 직장) 탈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해부구조의 원상 복구에 의해 기능도 회복된다는 것이다. 부족한 기능의 회복은 재활을 통해 향상된다. 퇴행성 변화가 너무 심하면 치료가 어렵다.
앨런이 마땅한 진단기구도 없었던 시기에 이 질환을 정의한 것은 경이롭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해 세련된 수술법으로 포장, 동료 의사들을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심근경색으로 로마에서 쓰러졌고 영국으로 귀국해서 치료받았으나 아쉽게도 61세에 사망했다. 그의 변실금 수술방법은 너무나 창의적이고 매혹적이어서 많은 의사가 흉내 냈지만 재현성이 부족했고 관심 밖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수많은 외과의사의 덕택으로 복강경 수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의 아이디어를 대체할 수술 기술이 개발된 것은 당연지사이고 외과의사에겐 행복한 일이다.
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