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인들은 세상이 ‘우유의 바다(크시라 사가라)’에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했다. 힌두교 창세신화에 따르면 악마(아수라)와 싸우다 몰살 위기에 몰린 신(데바)들은 우주 질서를 유지하는 신 비슈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비슈누는 데바와 아수라가 협력해 우유바다를 휘저어 불로장생의 영약 ‘암리타’를 만들 것을 권한다. 이들은 거대한 뱀 바스키를 만다라산에 감은 뒤 머리와 꼬리를 잡고 우유바다를 1000년 간 휘저은 끝에 암리타를 얻는다. 데바와 아수라는 암리타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 네 방울을 갠지스강 등지에 떨어뜨린다.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과거의 죄를 씻으려는 의식(쿰브 멜라)은 여기서 비롯됐다.
힌두 신화의 우유바다가 실제 존재한다. 미국 콜로라도대 스티브 밀러 대기과학 교수는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최근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2021년 위성사진에 포착된 인도네시아 자바 앞바다의 대규모 발광 현상이 우유바다임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이 현상은 2019년 8월 자바 앞바다를 지나던 요트 가네샤호의 선장과 선원들에 의해 목격됐다. 선장은 “바다가 하얗다. 배가 마치 눈 위를 항해하는 것 같다”고 항해일지에 썼다. 밀러 교수는 미 해양대기청이 10년 간 찍은 위성사진을 분석해 전 세계에서 12개의 우유바다 후보를 발견했다고 한다. 우유바다 현상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수조 마리의 발광 미생물이 집단적으로 빛을 내면서 바다가 하얗게 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차원 세계를 접하는 듯 신비롭다.
신화 속 우유바다는 뿌옇게 흐려 앞날을 알 수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인생을 의미한다. 또 데바, 아수라, 바스키, 만다라산은 각각 선과 악, 인간의 욕망과 의지를 뜻한다. ‘우유바다 휘젓기’는 선과 악 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의 의미와 진리(암리타)를 깨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신화는 인도를 넘어 태국과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에까지 퍼졌다. 캄보디아의 힌두교 사원 앙코르와트의 회랑 벽에는 신화를 형상화한 길이 49m에 달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조각에는 진리와 갱생을 향한 염원이 뜨겁다.
암리타에 대한 열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유행과 갈수록 심화돼 가는 경제 위기는 절실함을 더한다. 우유바다 발견 소식은 그래서 한 줄기 희망으로 다가온다. 세상 어딘가에는 우리를 암리타로 인도할 수 있는 하얗게 빛나는 바다가 있을 것이란 희망이다.
이경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