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증시가 고점 대비 20% 넘게 하락하면 ‘약세장’에 진입했다고 본다. 과거 경험상 20% 이상 하락했을 경우 보통은 10% 넘게 추가 하락을 이어가고, 최악의 경우엔 20% 이상 한번 더 급락을 했다.
코스피의 전 고점은 3316. 한국증시의 약세장은 이 지수 대비 -20% 정도인 2650이 기준선이 된다. 지난 5월 2550선까지 밀렸지만 바로 회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완전히 약세장을 벗어났다고 하긴 힘들다. 언제든 2600~2650선이 무너진다면, 그리고, 지난 5월처럼 급반등을 하지 못한다면 본격 약세장에 돌입할 수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나스닥은 이미 고점 대비 20% 넘게 빠져 약세장에 들어갔고, 다우지수는 3만선을 지켜낸 후 급반등에 성공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증시를 포함한 세계 주식시장은 왜 이런 난국에 빠졌을까. 쉽게는 인플레이션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증시는 인플레이션과 궁합이 맞는 측면도 있다. 가령, 기업실적을 보자. 명목치로 파악되는 지표는 인플레 도움을 받아 ‘개선(?)’되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투자론을 봐도 인플레이션의 초기~중기 단계에선 ‘주식투자가 가장 좋다’고 한다.
혹시 지금 걱정은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큰 폭으로 올리는 금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과거 ‘금리 인상’ 국면에선 주식은 대부분 올랐다. ‘증시는 금리상승기에 오른다’는 실증적으로 입증된 주식이론이다. 하지만 현 상황을 보면 이런 패턴이 먹히지 않고 있다. 왜일까. 시장은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고 또 올려도 물가를 잡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이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경기침체(stag)와 인플레이션(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제 상황이다. 물가가 급속도로 오르면 중앙은행은 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데, 이 금리 인상은 수요를 위축시킨다. 보통은 이 과정에서 물가는 잡힌다. 금리 인상으로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은 떨어지게 돼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에도 물가가 더 오른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솔직히 물가만 잡는다면 금리 상승기는 그렇게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잡히지 않는 거다. 이러면 수요가 약화 되면서 경기가 힘들어지는데 그럼에도 물가는 계속 올라 소비를 붕괴시켜버린다. ‘경기침체’로 빠져드는 것이다.
최근 스태그플레이션의 사례로는 1980년 미국 경제를 꼽을 수 있다. 1970년대엔 산유국들이 국제유가를 폭등시키는 2번의 석유 파동(오일쇼크)이 있었고, 이런 와중에서도 미국은 계속 돈을 풀었다. 이 결과 1979년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3.3%까지 치솟는다. 이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폴 볼커 연준 의장은 초강력 긴축정책을 펼친다. 약 1년 3개월 사이(1979년 9월~1980년 12월) 연방 기금금리를 12.2%에서 22%로 10%포인트 가까이 인상하는 극약 처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경제는 곤두박질쳤고,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 물론, 결국 미 연준은 승리했다. 1982년 물가상승률을 4%까지 떨어뜨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고용시장은 망가져 실업률이 10%를 넘었고, 기업은 줄도산했다. 금리인상으로 물가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경기를 침체시켜,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 물가를 잡은 거였다.
지금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세계 경제는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풀었는데, 이중 절반에 해당하는 돈을 코로나19 기간에 또 쏟아부었다. 여기에 공급에 왜곡이 생겼다.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파괴돼 제품가격이 올랐고, 산유국들은 마지막 석유 시대에서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려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와 농산물 가격은 급등했고, 이상기후에 3년 가까이 작황은 최악이다. ‘유동성+공급부족’이 합쳐진 ‘복합인플레이션’이다.
금리 인상? 경기를 망가뜨리지 않고 물가만 잡을 수 있다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물가가 꺾일 조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인플레이션 ‘정점(peak out)’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정철진 경제 컬럼니스트·진 투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