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부처가 인도 영축산에서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고 한다. ‘법화경’은 그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부처님께서 대승경(大乘經)을 설하여 마치신 후 가부좌를 맺으시고 무량의처(無量義處) 삼매(三昧)에 드시니 몸과 마음이 동요하지 않으셨다. 이때 하늘이 만다라꽃과 마하만다라꽃과 만수사꽃과 마하만수사꽃을 비 오듯이 내리어 부처님과 모든 대중에게 흩날렸다.” 법화경 해설서인 ‘법화경소’는 꽃비의 의미를 “비상법(非常法·무상의 진리)을 설하니 하늘이 감동하여 꽃 공양을 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신라 이차돈의 순교 때도 꽃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경북 경주 백률사에서 출토된 ‘석당기’에 “담당관리가 곧 이차돈의 관을 벗기고 손을 뒤로 묶은 다음 관아의 뜰로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처형을 알렸다. 참수할 때 목 가운데서 흰 젖이 한 길이나 솟구치니, 이때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이 뒤흔들렸다”고 나온다. 석당기는 이차돈이 순교한지 290년이 지난 818년(통일신라 헌덕왕 10년)에 그를 추모해 세운 높이 106㎝의 6면 비석에 새긴 글이다. 이차돈의 순교 이후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였으니, 이 꽃비는 신라에 전파된 부처의 진리라 할 수 있겠다.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숭상한 조선 시대에도 꽃비(雨花·우화)를 기록했다. 그것도 최고 문서인 실록에 12번 남겼는데, 세조조에 9번으로 가장 많고 성종조(2번)와 예종조(1번)가 뒤를 이었다. 1466년(세조 12년) 7월 17일 기사에는 “법회하는 날에 서기가 광채를 내쏟고 우화와 설리(設利·사리)의 기이함이 있으니, 백관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축하했다”고 썼다. 세조는 간경도감을 설치해 ‘법화경’ ‘금강경’ 등 불경을 간행하며 불교에 애착을 보였다.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 조카와 동생, 신하 등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을 속죄하면서 용서의 꽃비가 내리길 바란 것으로 여겨진다.
절정을 넘은 남부의 벚꽃이 지고 있다. 수영강을 향해 부드럽게 휘어진 부산 온천천변에는 하얀 꽃비가 내린다. 난분분 떨어지는 꽃잎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축복이든, 용서든 하늘의 어떤 섭리도 우리는 감당할 자격이 있다. 지난 2년여 코로나19 사태 동안 아플 만큼 아팠고, 속죄할 만큼 속죄하지 않았던가. 꽃비는 “참 고생 많았다. 이젠 편히 쉴 때가 됐다”는 부처의 말 없는 인정이 아닐까. 꽃이 진 자리에 푸릇푸릇 새싹이 돋아난다. ‘탈코로나’를 예고하는 생명의 약동이다. 그렇게 봄은 무르익어 가고, 우리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