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와 그의 두뇌를 알아보기 위한 첫 번째 추론 방식은 그가 주변에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통치자의 측근을 보면 그의 지적 능력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거의 쓰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을 쓴다. 이탈리아어로 두뇌를 가리키는 ‘체르벨로(cervello)’라는 단어를 쓴 것이다. 영어의 ‘브레인(brain)’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만큼 자신의 주장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세간의 통념을 깨기 위해서다. “흔히 군주가 현명하다는 평판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조언을 듣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착각이다. 왜냐하면 스스로 현명하지 못한 군주가 좋은 조언을 받을 수 없음은 결코 틀리지 않는 일반 법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결론은 이렇다. “좋은 조언은 어느 누가 하든 상관없이 군주의 분별력에서 나오는 것이지, 군주의 분별력이 좋은 조언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명석하고 분별력 있는 군주는 좋은 조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선별해서 거느리며, 그들의 조언을 가려서 들을 줄 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일반 법칙은 바로 오늘 우리의 정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고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다. 윤 당선인은 ‘어쩌다 정치인’이 된 경우다. 이에 관해서는 이미 일 년 전에 본지 칼럼에서 논한 바 있다(2021년 3월 18일 자, 캐릭터 변수와 ‘어쩌다 정치인’). 그는 직업 정치인이 아닌 특별한 캐릭터 변수로서 정계에 뛰어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기존 정치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누구의 도움을 받고 어떤 조언을 들어야 하는지는 그 자신이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 곧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꼭 필요한 분별력을 방해하는 요소가 윤 당선인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이 걱정거리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까지는, 기존 정치 무대에서 윤석열이라는 캐릭터는 참신하고 때론 충격적이며 나아가 기대감 잔뜩 갖게 하는 그 무엇이다. 그 캐릭터는 ‘소신’이라는 말로 대변된다. 종종 ‘강골’이라는 수식어로 그 의미가 강화되기도 한다. 그 자신도 지난 3월 10일 새벽 ‘당선 인사’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께서는 26년간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제 소신에 희망을 걸고 저를 이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공인의 소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나라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 또는 공동선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곧 소신을 위한 소신, 강골을 위한 강골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 년 전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이런 캐릭터는 ‘정치적 허영’에 취약하다. 소신과 강골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로 여길수록 나르시시즘의 강도가 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단을 위한 결단’ 또한 하게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믿는 대로 결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 모습에서 자아도취적 성취감을 느낀다. 권력에 굴하지 않는 소신은 감동적이지만, 권력이 내세우는 소신과 결단은 위협적이다.
이제 문제의 핵심이 드러난다. ‘분별없이 수용한 조언’과 ‘결단을 위한 결단의 의지’가 결합하면, 사달이 날 수 있다. ‘어쩌다 정치인’은 위태위태하다. 서로 엇갈리는 조언을 들어야 하고 동시에 최고 권력자의 소신과 결단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의 행보에 실수가 있을 때마다 ‘이를 또 어쩌나’ 하고 걱정하게 된다.
물론 국민은 당선인이 결코 ‘어쩌나 정치인’이 아니라, 제대로 능력을 발휘해 ‘어쩜 이런 정치인이!’라는 찬사를 듣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나도 언젠가 그런 제목의 글을 쓰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당선인에게 이런 고언(苦言)이 필요할 듯싶다. 인사 문제는 누구든 강조할 것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다. 다만 모든 인사에는 마키아벨리의 직설처럼 인사권자의 체르벨로, 곧 지적 능력이 반영됨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람을 볼 줄 아는 인문적 성찰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신의 캐릭터를 상수로 고정하지 말아야 한다. 소신 강골 결단의 캐릭터를 바꾸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점에 관해서도 마키아벨리의 말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스스로 유연하게 행동할 줄 알 만큼 분별 있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다”며 현실을 직시한다. 이는 사람들이 타고난 기질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성공 가도를 걸어온 사람의 경우 바로 그 행동 방식을 버리도록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곧 자기 변화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는 능력 있는 통치자라면 ‘자기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대와 상황에 맞추어 “본성을 바꾼다면” 운명의 여신도 도울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자기 혁신’이야말로 급변하는 상황과 운명의 장난에도 맞설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