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이 5년마다 한 번씩 질풍노도 같은 정치과몰입 상태를 겪는다. 어쨌거나 대선은 끝났고 장차 새 당선자가 잘해주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집무실 이전 문제로 후폭풍이 불고는 있지만 애써 한 발 떨어져 보려고 노력한다. 강아지 산책 시간을 두 배로 늘렸고 빵 굽기를 다시 시작했다. 반죽기 블렌더 오븐 등등까지 아예 새로 장만했고 뉴스를 보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민주당 수준의 리버럴이 국정을 맡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해 온 터라 이 대선은 나의 패배이기도 하다. 산책하며, 밀가루 반죽 발효를 기다리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저잣거리 담론 수준으로 항상 세 사람을 떠올린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 요즘 다들 말하지만 대선 패배는 그의 탓이 가장 크다. 후보자 기대치보다 정권교체 요구가 더 컸기에 패배한 것이니 반박불가다. 그는 성실하고 청렴했고 품위 있었다. 무엇보다 외교 국방 경제 문화 영역에서 성과가 컸다. 선진국에 올라선 첫 대통령의 영예를 누렸고 압도적 의회권력, 지방권력까지 차지했다. 못할 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정치가 실종됐던 것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 탓인 듯하다. 처절한 검란이 벌어져도 우물쭈물, 허무한 공수처 소동, 무엇보다 온갖 정치적 판단과 명운이 판사 재량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사법 독재적 상황이 펼쳐지는데 수수방관했다. 방역지침을 포함해 국가의 주요 결정에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해외 국가수반들이 날마다 기자 앞에서 입씨름을 벌이며 국민을 설득하는데 한국에는 대변인, 장관 또는 전문가가 등장할 뿐 책임자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기재부 장관과 집권당이 코로나 손실 보상액 규모를 놓고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적어도 작년 가을쯤에는 대통령이 결론을 내려야 했다. 누구도 왕이나 독재자를 바라지 않지만 상황을 이끌고 책임지는 국가 중심축은 존재해야 하지 않는가. 결국 어영부영하다 야당에 정권을 잃었다.
윤석열 당선자. 그는 누구인가. 통상 국민 앞에 장기간 노출된 인물이 당선되는 데 그는 갑자기 등장했다. 강골이면서 친화력 있는 캐릭터라는데 국정을 꿰뚫고 혜안을 발휘해 미래개척을 해나갈 능력이 있는지 판단유보 상태다. 하지만 기대감을 떨칠 수는 없다. 이제 막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고 전 세계적 격변이 진행되는 터라 국가 주도로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덕담할 시점이지만 혹시 모를 우려도 짚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권력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의회는 다수 야당 벽에 막혀 있고 국민 지지도는 역대 최저다. 선거 때 갑자기 둘러싼 의원들을 당내 기반이라 하기도 힘들다. 당연히 권력 강화 욕망이 들 것이다. 이 비슷한 상황에서 노태우 정부는 무지막지한 사정정국을 집권 초 1년 가까이 끌었다. 여야 가리지 않고 마구 잡아넣는 사정이 진행되면 꽤나 어지러운 시절이 도래할 것이다.
또 하나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현 균형외교를 벗어나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쪽으로 나가는 선택이다. 안보위기 국면이 초래되면 초유의 강화된 권력을 누릴 수 있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혹시 MD(미 미사일방어체계)라도 도입한다면 한한령 따위는 간지러운 수준의 가혹한 대중 무역 절벽에 직면할 텐데 설마? 하지만 그는 반중을 목 놓아 외치는 인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권력 강화의 또 다른 선택지는 지지기반에 패를 거는 일이다. 재계 최상층부에 민영화라는 선물이 있다. 민영화의 대마는 역시나 의료분야다. 거대자본에 남아있는 최종 먹잇감인 것. 이명박 집권 초 시행하려다 광우병 시위에 좌초된 일인데 우선 영리병원 확충으로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더해 정적 이재명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확고한 대선주자 없는 정당은 의원 수가 많아도 오합지졸이 된다. 민주당 내 우호세력과 합작해 이재명 제거에 성공한다면 국힘 쪽 논객들이 주장하듯 일본 자민당식 영구집권 토대구축도 가능할 것이다. 모두 기우이기를 바란다.
가장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인물은 역시 이재명이다. 그는 현재 위태로운 돛배와 같다. 정치적 사망 시도 앞에 놓일 공산도 크지만 더 큰 위기는 그를 향한 팬덤의 확장이다. 대선 패배의 주요인으로 문재인식 국정 수행 행태를 들었는데 그걸 다르게 해석하면 노무현 트라우마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노통 때 지지세력들이 사사건건 국정에 개입하고 반대를 드높이다 그를 벼랑으로 내몰았다는 원죄의식이 워낙 강했다. 그 팬덤의 계승자라 할 문재인 지지세력들은 대통령 비판을 철저히 금기시했다. 그것이 노무현 트라우마다. 민주당 의원들 역시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다. 팬덤이 워낙 막강했으니까. 이제 팬덤정치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이재명은 팬들에 둘러싸이기보다 당에 안착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당대표에 옹립되고 다음 총선에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가져야 한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국민과 접촉하고 소통할 시간에 여의도에 상주해야 한다. 그는 또 하나의 김대중이 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