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예원에 바람을 일으켰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주변에는 많은 추종자가 있었다. 소당(小塘) 이재관(李在寬, 1783-1849) 또한 ‘추사유파’라 불릴 만한 인물 중의 한 명이었다. 김정희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이가 많았다. 주로 본인의 글씨나 난초 그림을 부탁하는 이가 많았지만, 간혹 집안의 초상화 같은 특별한 주문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초상화는 전문적인 회화 수업을 받은 화사들만이 그릴 수 있는 것이라 하는 수 없이 주변 인물을 추천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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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관 ‘송하처사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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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주변에 초상화를 그릴만한 이로는 도화서에 속한 화원들이 있었다. 유숙 조중묵 이한철 등이 화원으로 초상화를 그릴 만했고 그중에서도 이한철은 초상화를 전문으로 할 만큼 유명세가 있었다. 그러나 김정희는 이들을 택하지 않고 주로 이재관을 추천했다고 한다. 김정희가 이재관을 추천한 이유는 그림 솜씨뿐만 아니라 인간 됨됨이가 훌륭하고 학문도 깊어 초상화의 핵심인 ‘전신사조(傳神寫照)’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재관은 중인 출신으로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후 집이 가난해지자 그림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재주와 노력으로 일가를 이뤘다고 한다. 20세 전후에는 ‘흔연관(欣然館)’이란 개인 화실을 두고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다. 말년이 돼서야 화원으로 활동하는데, 임금의 어진(御眞)을 모사하거나 의궤를 제작할 때 참여했다. 도화서에 정식으로 소속된 화원은 아니었으며, 국가의 큰 행사 때 차출돼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관은 김정희나 조희룡과 친했지만 그림 부분에서는 김정희보다는 도화서 화원들 사이에서 유행한 김홍도 화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홍도의 세련된 화법을 본받으면서 자신의 개성을 넣어 자신만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실제 그의 그림을 보면 구성이 안정돼 있고, 필법이 매우 감성적이며 감각적이다. 화려한 선묘의 구사나 능란한 먹의 활용 솜씨는 김홍도 못지않다. 조희룡, 강진 등의 화제와 함께 구성한 ‘시의도(詩意圖)’에서는 그의 특출한 솜씨가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송하처사도(松下處士圖)’는 김홍도의 어떤 그림에도 못지않은 세련됨과 격조를 보여준다. 옅은 먹으로 커다란 바위를 그림자처럼 배경으로 깔고, 그 앞에 빠른 필선을 겹쳐 오래된 소나무를 길게 쳐올렸다. 거친 소나무 껍질과 날렵한 잎의 표현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나무 아래 물가에 두건 차림의 도인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시동이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옅은 먹과 진한 먹의 어울림이 김홍도의 그림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명품이다.